구약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다윗은 나이 어린 양치기 목동으로 전투 경험이 전무하다. 그러나 그는 청동 갑옷과 칼과 창으로 무장한 키가 2미터가 넘는 거구의 골리앗과의 1:1 대결에서, 돌팔매질로 골리앗의 약점인 미간을 공격하여 승리한다. 이 이야기는 약자가 강자와 싸워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경쟁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윗은 골리앗이 절대적 우위를 가지고 있는 근접전을 피하고, 자신의 강점인 민첩성과 돌팔매질을 활용하여 골리앗의 급소를 공격함으로써 승리를 쟁취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겉으로 보기에 절대적 강자로 보여도 사실은 약점이 있게 마련이고, 자신이 왜소하고 약해 보여도 누구든 강점화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경쟁전략의 요체는 나와 상대를 잘 알고, 나의 특성을 강점으로 삼아, 온 힘을 집중하여 상대의 급소를 공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역경도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

베트남은 자신보다 훨씬 막강한 전력을 보유한 프랑스와 미국을 상대로 독립 전쟁을 치러 승리로 이끌었다. 화력과 장비가 월등했던 프랑스군은 1954년 디엔비엔푸에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하고 승리를 낙관하였지만, 보 응웬 지압 장군이 지휘하는 베트남의 군대는 디엔비엔푸를 포위하고 집요하게 공격한 끝에 55일만에 프랑스군의 항복을 받아낸다. 지압의 군대는 프랑스군의 예상을 뒤엎고, 105미리 곡사포를 가지고 나타나 공격했다. 그들은 크고 무거운 중장비를 분해해서 짊어지거나 밧줄로 몸에 묶어서 끌고 이동을 했다. 이렇게 하루에 800미터씩 3개월에 걸쳐 무기를 운반하였고, 200대의 자전거를 동원해서 강과 정글을 통과하여 식량을 실어 날랐다.

베트남은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국면의 전환을 이끌어 낸 것은 1968년 1월 테트(설날) 공세였다. 북베트남군은 당시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던 남베트남의 주요시설을 동시에 공격했고, 사이공의 미국대사관을 일시적으로 점령했다. 남베트남군과 미군의 반격으로 북베트남은 군사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으나, TV 보도를 통해 베트남 전쟁의 피해와 실상을 목도하게 된 미국인들 사이에 반전 여론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여 1973년 1월에 종전협정에 서명하게 된다.

두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압 장군은 후일 인터뷰에서, 북베트남의 목표는 절대적으로 우세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미군을 굴복시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전쟁 의지를 꺾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테트 공세로 북베트남은 군사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지만 미국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어 전쟁을 종결하는 데는 성공한 것이다.

지압은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이긴다’ ‘적음으로 많음과 맞선다’ ‘질로 양을 이긴다’ 의 세 가지 전략을 가지고, 이에 대한 실천 전술로서 ‘적이 원하는 시간을 피하고’ ‘적이 낯익은 장소를 멀리 하고’ ‘적이 원하는 방법으로는 싸우지 않는다’ 의 3불 지침을 내렸다. 프랑스와 미국은 변변치 않은 무기만 가지고 참호와 땅굴을 파서 대항하는 적을 경시했지만, 지압은 다윗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특성을 살려 강점화하고 적의 약점을 공격함으로써, 압도적인 전력의 우위를 가지고 있는 강대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프랑스나 미국과 다른 방식으로 전쟁을 정의하고, 베트남 방식으로 싸워 이긴 것이다.

이는 기업으로 보면 제품이나 경영프로세스의 혁신을 통해 경쟁 방식을 새롭게 정의한 것과 같다. 마치 애플이 아이폰을 들고 나오면서 휴대폰 시장의 경쟁을 하드웨어가 아닌 생태계의 경쟁 방식으로 바꾼 것과 같다고 하겠다. 미국은 월등한 화력을 활용하여 속전속결을 원했으나, 베트남은 상대의 속도에 맞추지 않고 경쟁 방식을 새롭게 혁신하여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속도로 전쟁을 수행하여 승리하였다.

속도경영을 하려면 혁신이 수반되어야 한다. 특히 경쟁자에 비해 역량과 자원이 부족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저 부지런히 남들보다 더 많이 뛰어 다니는 것만으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혁신은 속도경영에 있어서 엔진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임계치 이상으로 속도를 높이려면 일하는 방법을 바꾸어서 제품이나 경영 프로세스를 혁신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특성이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고, 상대의 강점으로 보이는 것들이 무력화되도록 경쟁의 조건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은 익숙하고 편한 것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고, 낯설고 불편한 것을 받아들여 한층 발전시키는 혁신이 수반될 때 가능하다. 혁신이 따르지 않는 속도경영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조직의 피로감만 유발하고 구성원들의 의욕을 꺾어서 지치게만 할 뿐이다.

황경석 kyongshwang@gmail.com LG전자와 LG 디스플레이에서 경영자로 재직하였으며 국내외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속도경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경영전략 및 마케팅 분야의 컨설팅을 주로 하며 IT와 경영을 결합한 여러 저술 활동도 추진하고 있다. 연세대학원의 경제학과와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였고 현재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중소기업 및 창업기업에 대한 경영자문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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