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부는 1990년대 개방 초기에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고, 경제성장의 추동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외자기업을 유치했다. 특히 2001년 WTO에 가입하면서 관련 법령과 제도를 시장지향적으로 개혁하고 정비하여, 외자기업이 중국에서 경영활동을 하는데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영향으로 이후 약 10년간은 외자기업들이 너도나도 중국에 몰려들어 생산기지와 시장을 확보하고 과실을 향유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대부분의 산업에서는 총 생산공급능력이 시장 수요를 훨씬 초과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잉공급 능력은 중국 내수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 전체를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가 되었고, 그 와중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간 경쟁의 치열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정부는 외국인 지분 제한, 외국기업의 인수합병 제한 등 외자기업들에 대한 우대를 점차적으로 축소하는 조치를 취하였고,과거 중국의 고도성장기를 향유했던 외자기업들은 이제 중국시장의성장율 둔화와 비용 증가에 따른 수익률의 급격한 저하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편 중국의 로컬기업들은 외자기업 특히 다국적기업들을 통해 선진기술과 경영노하우를 어느 정도 습득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중국은 Global Standard 가 아닌 Chinese Standard가 지배하는 시장이다. 독자적인 시장구조와 거래 관행을 가지고 있으며 소비자 테이스트(Taste)도 독특하다. 로컬기업들은 독특한 경쟁지형을 가지고 있고 모든 방면에서 빠른 변화를 보이고 있는 거대한 자국 시장을 외자기업들보다 훨씬 잘 알고 대처할 수 있어서, 이미 적지 않은 분야에서 외자기업들이 로컬기업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명맥만 유지하거나 사업을 철수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초기에는 마치 매력적인 메가마켓(Mega Market)인 중국 시장이 외국기업들에게 다 넘어간 것 같이 보였지만, 개방 이후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경쟁의 양상이 바뀌고 로컬기업들이 득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정부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시간의 축을 긴 흐름에서 보고 전개한 전형적인 지구전의 사례라고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의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어 보자. 중국의 자동차 제조업은 모두 외국기업과의 합작으로 출발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중국에 가보면 길거리에서 보는 자동차들의 대부분은 합작으로 생산된 외국 브랜드 자동차였다. 마치 중국의 자동차 시장은 외국 브랜드가 점령해 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합자기업에 대한 중국정부의 적절한 통제 및 국산화 의무 정책에 힘입어,중국 기업들은 그간 자동차 제조에 대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해왔다. 최근 통계를 보면, 2016 상반기에 중국 내수 시장에서 판매된 자동차 중 토종 중국업체가 무려 43%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아직 한국기업에 비하여 60% 수준의 낮은 가격에 판매되긴 하지만 이젠 품질 격차도 크지 않다고 한다. 소비자의 취향과 생활 패턴을 더 잘 이해하고 발빠르게 상품에 반영하여, 실내공간을 크게 디자인하고 SUV를 중점 공략하는 등 토종 기업의 강점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점유율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미니밴과 소형트럭으로 틈새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여 한국 내수시장의 중국차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중국정부는 미래의 자동차인 전기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전기차 내수시장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 하에이미 중국 시장은 전세계 전기차 시장의 40%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이러한 내수시장의 규모를 레버리지로 하여 중국의 전기차 생산량은 이미 세계 1위이다.

1994년 최초로 ‘자동차 공업 산업정책’을 제정하여 시행한 지 2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아마 중국 정부는그간 의도적으로 펼쳐왔던 지구전 모드를 서서히 속도전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황경석 kyongshwang@gmail.com LG전자와 LG 디스플레이에서 경영자로 재직하였으며 국내외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속도경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경영전략 및 마케팅 분야의 컨설팅을 주로 하며 IT와 경영을 결합한 여러 저술 활동도 추진하고 있다. 연세대학원의 경제학과와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였고 현재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중소기업 및 창업기업에 대한 경영자문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