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뭘 먹지?”라는 고민은 어디에 살든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을 먹으면서, 점심 식사를 걱정하는 일도 예사다. 먹고 사는 문제는 방법의 차이 뿐, 어디나 비슷하다. 나는 나물과 된장찌개가 차려진 소박한 한식 시골 밥상을 좋아하는데 호주의 음식은 샐러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름져 입에 맞지가 않는다. 그 때문인지, 배앓이도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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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라 생활이 지난 2014년을 포함해 1년이 넘었는데도, 정확하게 호주의 전통음식이라는 것을 모르겠다. 코라가 전통이라는 것이 없는 이곳에서 무슨 전통 음식을 찾느냐고 타박하지만, 호주의 가정식이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곳의 기본 가정식은 감자와 고기, 2가지 채소를 곁들이는 것이라 한다. 여기에 아침 식사로 토스트나 시리얼, 그리고 점심 식사로 즐겨먹는 피쉬앤칩스가 있다. 디저트는 호주식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없고, 오후에 차를 즐겨 마신다. 호주의 음식에는 큰 줄기의 전통은 없지만 이 모든 식생활의 배경에는 영국이 있다.

굳이 호주만의 것을 찾으라 하면, ‘고기’와 ‘단백질’ 중심의 식생활이다. 보통의 호주인은 채식은 토끼 식사라고 부를 정도로 무시하면서 고기를 좋아한다. 한끼로 베이컨, 계란, 양고기, 소세지, 구운 토마토를 한 접시에 가득 담은 식사도 볼 수 있다고 하니 이곳의 고기 사랑은 알아줄 만하다. 그에 비하면 고기 가격은 그다지 싼 편이 아니다. 1킬로그램에 40, 50달러 짜리도 있으나 보통은 16~20달러 정도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이곳 캔버라 외곽만 하더라도 풀 뜯는 한가로운 소떼를 볼 수 있을 정도니 고기의 질은 따지지 않아도 된다. 대신 용도별로 구입하기를 권한다. 스튜용을 스테이크로 구워 먹으면 질기다.

이곳에서의 아침 식사는 비교적 간단하다. 흔히 콘티넨날 아침식사로 불리는 토스트나 시리얼, 그리고 커피. 예전 린다네에 함께 살던 캔버라 딕슨 소재의 한 사립고등학교 철학과 교사인 스티브는 아침에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모카포트를 이용해 내려 마실 뿐이다. 린다는 오트밀과 우유를 섞어 먹는다. 코라는 스티브처럼 모카포트를 이용해 커피를 내리고 전자 우유 거품기(Milk Frother)로 우유를 데우고 거품을 내 카푸치노를 마신다. 여기에 직접 만든 식빵을 구워 치즈와 함께 먹는다.

코라는 네덜란드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서만 살다가 9살때 호주로 이민을 왔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네덜란드 음식 특히 치즈와 소시지에 열광한다. ‘더치(dutch)’라는 글자가 없는 이들 제품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정도다. 특히 더치식 장기 숙성 치즈(old-aged cheese)를 좋아해 장을 보러 수퍼에 가면 언제나 호주인들은 치즈를 모른다며 투덜투덜, 좋은 치즈를 찾을 수 없다며 푸념하기 일쑤다. 그나마 네덜란드, 이탈리아, 그리스 등 유럽과 인도,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아시아로부터 수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인 덕분에 호주의 음식 문화가 풍부해졌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는 사실이다. 푸드코트를 가보면, 몇몇 호주 패스트푸드점을 제외하고는 인도, 중국,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의 외국 음식점이 대부분이다.

호주는 미국 다음 가는 다문화 국가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음식 분야만큼은 세계 각국의 것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장점도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향에 약하고, 기름에 비위가 상하니 이곳에서 정평이 나 있는 태국 음식이나 중국 음식도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식은 이곳에서는 전혀 유명하지 않다. 코리안 바비큐에 대한 인식은 있으나 다른 아시아 음식과 비교해 독특한 우리의 식문화는 이곳 현지인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빵도 하루 이틀이지 일주일 내내 아침 식사로 먹으려니 속에서 받아들여지질 않는다. 오늘은 호밀빵, 내일은 통밀빵, 오늘은 딸기잼과 치즈, 내일은 땅콩버터와 체리잼으로 종류를 바꿔 먹어도 일주일 내내 빵만 먹는 생활은 지긋지긋하다. 결국, 아침에 밥을 먹는 날을 추가했더니 코라의 잔소리는 늘었고 대신 내 속은 편해지고 있다.

코라는 내 식생활을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로 나도 코라의 식생활을 이해하기 어렵다. 어느날 아침에 밥과 찬을 내놓고 한참 먹고 있는데, 불쑥 몇 마디를 한다. “어떻게 디너(dinner)를 아침에 먹을 수 있지?” “하루에 몇 번이나 dinner를 먹는거야?” 중학교에서부터 아침식사는 breakfast, 점심은 lunch, 가벼운 저녁은 supper, 정찬 저녁은 dinner라고 배운 나의 짧은 영어로 코라가 무엇을 말하는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코라는 영어에서 dinner는 저녁 정찬이나 저녁 식사만을 가리키지 않고, 단백질, 탄수화물, 무기질, 비타민 등 영양이 고루 갖춰진 식사, 즉, 고기와 샐러드, 빵이나 감자를 곁들인 식사를 일컫는 보통 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 우리 식의 여러 찬과 밥 중심의 식사는 삼시세끼 디너가 되는 셈이다. 즉, 유럽인들은 저녁이건 점심이건 디너는 하루 한끼에 불과하고 그외 두끼 식사는 가볍게 토스트나 시리얼, 치즈 등을 먹는 셈이다. 코라는 외식을 가면 채소와 고기를 곁들인 메뉴를 시키고, 다 먹고 나서는 “오늘 디너는 이걸로 됐어”라고 말한다.

코라가 개들과 산책 중에 오며 가며 만나 친구가 된 오스트리아 출신 이민자인 리키를 통해서 제대로 된 서양 음식을 접했다. 그녀는 10년 동안 카페를 운영한 적이 있어, 요리사급의 요리 솜씨를 지녔다. 그녀의 홈스테이 학생인 홍콩 출신 렉스도 자국 음식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리키의 요리를 사랑하는 1인이 되었을 정도이고, 우리 역시 그녀가 식사에 초대하면 두말 않고 바로 ‘Yes’다. 채식 중심의 식사를 하는 나를 위한 배려로 샐러드를 제외한 꼭 한 가지씩의 채식 요리가 더 있다. 그녀의 디너 테이블에는 고기와 샐러드, 탄수화물이 중심인 파스타나 감자 요리, 음료, 디저트 등을 볼 수 있는데, 한결 같이 맛있다. 지금까지 세 번 초대를 받았는데, 매번 갈 때마다 새로운 요리가 등장했고, 우리는 그때마다 과식과 폭식을 하고 말았다.

아무리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늘 만들어 먹을 수는 없다. 코라는 한 달에 두어번 일요일 아침에 카페에 가서 식사를 한다. 베이컨, 마늘빵, 계란과 커피로 흔한 아침 메뉴이긴 하지만 일상의 번거로움으로부터 하루쯤 쉬고 싶은 마음에 그곳에 가는 것이다. 비싼 음식값에도 불구하고 이곳 사람들도 우리만큼 외식을 좋아한다. 한낮의 브런치 카페는 언제나 복잡하다. 아이도 나도 가끔은 유명한 수제 햄버거와 피자 가게에서 특식을 즐기기도 한다.

매일 아침이면, 아이에게 꼬박꼬박 묻는다. “오늘은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아이가 아무 대답도 내놓지 않으면, 나는 아침을 먹으면서 저녁 거리를 걱정한다. 리키 같은 솜씨좋은 이웃의 저녁 초대가 내심 기다려진다. 그 답례로 아주 아주 맛있는 코라표 커피 머랭이나 퀸케이크 혹은 호주커피케이크를 만들어갈텐데...

장윤정 eyjangnz@gmail.com 컴퓨터 전문지, 인터넷 신문, 인터넷 방송 분야에서 기자로, 기획자로 10여년 간 일했다. 현재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 아이와 함께 머물면서, 두 번째로 로컬처럼 살아보는 중이다. I AM 수행과 명상하는 삶을 추구한다.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의 이야기와 그들의 세계관, 미술작품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이곳의 하늘과 구름, 별에 푹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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