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시간 내에 두 팀이 겨루어 점수를 많이 내는 구기 종목에서 운영되는 전략 중에 속공과 지공이 있다. 속공이란 상대팀이 미처 수비 태세를 갖추기 전에 민첩함과 속도의 우위를 내세워 상대 진영을 교란하는 플레이이고, 지공 작전은 상대팀이 수비 라인을 다 갖추고 있을 때 볼을 점유하고 공격 타이밍을 늦추어서 상대 팀의 선수들을 끌어내어 공간을 창출하려는 것이다. 강한 팀은 상황에 따라 속공과 지공을 적절히 구사하고 자유자재로 변환시켜 경기의 흐름을 주도함으로써, 상대 팀의 템포를 무력화하고 집중력을 떨어뜨리며 실수를 유도한다.

군사학에도 속도전과 지구전이 있다. 몽골 군대는 속도전으로 제국을 건설하였다. 나폴레옹의 군대와 2차 대전 시의 독일군은 속도전으로 성공하였으나, 러시아를 공격할 때에는 공통적으로 러시아의 지구전 전략에 말려서 초기의 승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 패퇴하였다. 기원전 3세기에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장군은 신속한 기병을 앞세워 이탈리아 반도를 유린하다가, 로마의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지구전 전략에 휘말려, 4년간 남부 이탈리아에서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전력이 소모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

지구전은 일반적으로 국토가 광대하거나 험준한 지형을 가진 국가가, 전력이 월등한 적군을 맞아 결전을 피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 적군의 전력을 소모시키고, 보급품 부족과 오랜 전쟁으로 지친 적군을 격퇴시키는 전략이다. 자국 내에서 전쟁이 장기간 지속되게 되고, 민생의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하므로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확보하지 않으면 승리하기 어렵다. 그러나 마냥 전투를 피하는 것이 아니고, 자국의 지형에 익숙한 점을 활용하여 게릴라전 등 비정규전을 병행 전개하여야 지구전의 효과가 배가된다.

모택동은 1937년 발발한 중일 전쟁 시에 전력이 월등했던 일본을 상대로 지구전을 펼칠 것을 제안하면서도, 세부적으로는 주동적이고 민첩하게 ‘방어전 중의 공격전’, ‘지구전 중의 속도전’을 수행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전략방침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무기가 아니고 민중이라고 강조하면서 무기의 열세는 민중의 지지와 대동단결로 보완할 수 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거대한 국토를 이용하여 무려 8년간 전쟁을 끌면서 일본의 전력과 자원을 고갈시키는 소모전을 통해 승리를 쟁취한다.

군사학에서 지구전을 택하는 이유는, 전력이 월등한 적의 예봉을 피하기 위해, 속전속결하는 적극적 전략을 택하지 않고 전쟁을 장기화시켜 적의 힘을 빼려는 것이다. 기업의 경영에 있어서는 경쟁자가 압도적으로 우월한 역량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 전면적인 경쟁을 피하고 국지적으로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세력을 확보하다가, 환경의 변화로 경쟁자가 틈을 보이기를 기다리는 경우를 지구전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손자는 형세(形勢)를 얘기했다. 형(形)이란 전쟁에서 객관적으로 보여지는 군사력이나 국가의 전반적인 역량이라 할 수 있고, 세(勢)란 전쟁에서 인위적으로 조성되는 일종의 힘을 말하는데, 손자는 세(勢)를 가리켜 물살의 흐름이 빠르고 거세어 바위조차 떠내려 가게 하는 것이라고 비유하였다. 내가 상대보다 힘이 약한 경우, 형(形)에서는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상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위치의 차이를 활용한 세(勢)를 조성하여 상대를 이길 수 있다. 이는 모택동이 지구전을 하더라도 국지적으로는 속도전을 병행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전반적인 전력은 일본군에 비해 터무니 없이 열세이지만 특정한 국면에서는 세(勢)를 조성하여 상대를 압도할 수 있고 그 경우엔 과감하게 속도를 높여 상대를 공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속도전과 지구전을 서로 대립적인 개념으로 이해하지만, 손자가 말한 형세(形勢)의 개념을 차용해서 보면 사실 두 전략은 본질적으로 같은 원리이다. 경쟁은 상대적인 것이다. 내가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을 땐 속도전을 펴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여 단기적으로 승부를 결정짓고, 상대가 우위를 가지고 있을 땐 내가 유리한 부분에서만 싸우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상대가 허점을 보이는 순간에 신속히 공격을 전개한다. 속도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주도적으로 공격해야 할 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되, 일단 때가 되어 공격을 시작하게 되면 나의 강점이 발휘되도록 신속히 속도를 높여 승부를 내는 것이 경쟁에서 이기는 원리이다

황경석 kyongshwang@gmail.com LG전자와 LG 디스플레이에서 경영자로 재직하였으며 국내외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속도경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경영전략 및 마케팅 분야의 컨설팅을 주로 하며 IT와 경영을 결합한 여러 저술 활동도 추진하고 있다. 연세대학원의 경제학과와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였고 현재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중소기업 및 창업기업에 대한 경영자문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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