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나뭇잎 하나
뒤통수를 건드리고
재밌다는 듯이
까르르 날아간다

쟤는
언제부터
나를 노리고 있었을까?

작가의 말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허 생원은 출세한 사람이다. 보통 상황이라면 감히 넘볼 수 없는 ‘미스 봉평’인 성 서방네 처녀와 하룻밤을 보냈으니 말이다.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허 생원은 자신의 그 하룻밤을 ‘무섭고도 기막힌 밤’이라고 표현한다. 만약 여름이 아니었다면, 메밀꽃 피는 신비로운 달밤이 아니었다면, 성 서방네가 한참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다면, 허 생원이 밤중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오지 않았다면 물방앗간에서 울고 있는 성 서방네 처녀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인생을 돌이켜 보면 참 신비로운 인연들이 많다. 현재의 ‘나’가 있기까지 우연의 요소가 우리 인생 도처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것을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도 부른다. 필자는 97년부터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은 아주 작은 만남부터였다. 강남역 부근에 있는 직장을 다니던 중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강남역으로 내려가는 지하철 계단에서 군대 동기를 만났다.(그 때만 해도 강남역 지하에는 식당이 많았다.) 그 친구는 대치동에 있는 유명한 학원에서 과학 강사로 근무하는 중이었다. 결국 그 친구와의 얘기 끝에 한 학원을 소개받고 학원가로 들어서게 되었다.

필자가 현재 이 공간에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한 나뭇잎과의 인연이었다. 언젠가 어떤 교육기관에서 점심을 먹고 공원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나뭇잎 하나가 내 뒤통수를 스치고 지나갔다. 돌아보니 그 나뭇잎이 팽이가 도는 듯한 모양으로 돌면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양이 마치 나의 뒤통수를 툭 치고 도망가며 웃는 듯했다. 상황이 너무 인상 깊어 간단한 시로 써보았고 SNS에 올렸다. 그랬더니 유독 한 분이 과하게 칭찬을 해주었고, 이후에도 직접 만날 때마다 ‘까르르’라는 단어를 자주 꺼냈다. 거기에 용기를 얻은 필자는 틈만 나면 시를 써서 올렸고, 급기야는 시집을 내고, 또 그 인연으로 이 공간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 그 나뭇잎과 과한 칭찬을 해준 분이 없었다면 지금 필자의 이 페이지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 인생은 인연의 연속이다. 선생님, 친구, 직장 동료 등 사람들과의 만나는 인연들이 있고, 책, 영화, 여행 등 개인적인 일상에서 만나는 인연들이 있다. 어느 정도 규격화된 일상에서의 인연들이 있는가 하면, 우연하게 만나는 인연들도 꽤나 많다. 지금 당신의 옆자리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만났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연이란 참 소중하면서도 무서운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뭇잎과 같은 작은 인연도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최성원 기자 ipsi1004@nextdaily.co.kr 시인이자 칼럼니스트이다. 시집으로 「천국에도 기지국이 있다면」이 있다. 현재 최성원입시전략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오랫동안 국어 강사를 하며 ‘하얀국어’라는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문학 작품을 소재로 한 칼럼, 인기 브랜드에 숨겨진 이야기를 소재로 한 기사, 우리 사회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두루 조명하는 ‘최성원의 초이스 인터뷰’ 등을 차례로 연재할 예정이다. 걷기와 운동, 독서와 집필, 사람 만나는 것, 그리고 야구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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