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부희 감독의 ‘달인(The Master : An Ordinary Man)’은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중 ‘한국단편 경쟁’ 섹션에서 상영되는 월드 프리미어 단편 영화이다. 마치 TV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편집과 현실적인 이야기는 세미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같이 느껴진다.

우리에게 만연된 ‘빨리빨리 문화’의 초절정인 배달의 달인 이야기를 다루며, 위험 앞에 노출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화는 바라보고 있다. 초스피드의 배달이 제3자적 입장에서 볼 때는 위험하다고 걱정하고 염려하면서도, 자신이 시킨 음식은 무조건 배달되길 바라는 우리의 이중성이 영화에 담겨져 있다.

◇ TV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자막과 내레이션, 코믹한 설정을 통하여 아픔을 드러내다

강두호(김도윤 분)은 31세로, 경력 10년째인 배달의 달인이다. 두호는 달인을 찾아가는 TV 프로그램의 배달의 기수 편에 출연하기도 한다. TV 프로그램 장면이 영화 속 장면으로 나오기 때문에, 영화 초반부터 관객들에게는 익숙함으로 인해 친근하게 여겨질 수 있다.

‘달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달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15분만에 피자 배달 도전하기를 하면서 나오는 자막과 내레이션은 흥미를 유발시키고 재미를 주는데, 방송이 나간 이후 더 바빠지는 도윤의 모습 또한 예능적인 분위기로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핫피자 CEO인 박인비 사장(이주원 분)은 배달 알바생들에게 항상 천천히 빨리 다녀오라고 말하는데, 이런 점 역시 예능적 대사의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흥미로운 재미 뒤에는 경쟁을 위해서 불법, 위험을 무릅쓰고 바이크 운전을 하며, 심지어 사람이 다니는 인도에서 바이크를 타는 것이 꿀팁인 것처럼 후배 알바생들에게 전수하는 아찔함이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배달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으로 시작하지 않고, 관객들이 친숙한 방법을 통하여 그 곳으로 안내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 희망고문과 상대적 박탈감, 남의 시야로 바라보기와 내 일이라고 생각하기

박사장은 병수(김준용 분), 원기(윤현식 분) 등 배달을 하는 사람들에게 두호처럼 되기를 독려하나, 모든 알바생들이 두호처럼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박사장이 알바생들에게 말하는 것은 희망일까, 희망고문일까?

여기서 희망을 주는 것과 희망고문을 하는 것의 차이를 잠시 생각해보자. 두 가지는 서로 유사하다. 그래서 이것이 희망인지 희망고문인지 헛갈리기 쉽다. 내가 그 당사자라면 더욱 그렇다. 희망고문을 희망으로 알고 집착하게 될 수도 있고, 희망고문인줄 알고 희망을 포기할 수도 있다.

‘달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달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희망과 희망고문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가능성과 함께 말하는 사람의 진정성이다. 막연하거나 확률이 극히 낮은 것은 희망고문일 가능성이 많다.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을 이루겠다는 것이기에, 애초부터 가능성이 많아야 희망이 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의 진정성이다. 말하는 사람은 실제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듣는 사람에게 단순히 용기를 주기 위해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희망고문이다. 특히 영향력 있는 사람이 자신은 희망을 전파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며 던지는 희망고문에 많은 사람들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면서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

‘달인’에서 박사장이 알바생들에게 두호처럼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 희망고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가능성이 낮기도 하지만, 진정성이 결여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희망고문은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가중시키게 된다. 영화 속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달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달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남 이야기 하듯 던지는 희망고문 못지 않게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은 영화 속에 또 있다. 사람들은 바이크를 타고 배달에 종사하는 배달원들이 빠르게 주행하는 것에 대하여 안전과 위험을 걱정하고 염려하지만, 자신이 배달음식을 시켰을 경우에는 조금이라도 늦으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3자적 입장에서 남의 시야로 바라볼 때와 내 입장으로 바라볼 때 너무나도 크게 이율배반하고 있는 심리를 영화는 담고 있다. 눈앞의 목표에 아등바등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 특히 청춘들을 사람들이 걱정하고 생각해주는 것 같지만 그런 마음에 대한 진정성 여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마음을 영화는 모두 전달하고 있다.

◇ 관객들에게 시간 순서대로 보이는 영화, 시간 순서대로 찍을 수 없는 촬영 현장

일반적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고, 영화 촬영 전에 콘티(conti)가 만들어지는데 콘티의 바른 영어 표현은 콘티뉴어티(continuity)이다. 콘티는 영화를 찍기 전에 시나리오를 토대로 필요한 사항을 그림과 글로 표현해 놓은, 장면 연결의 스케치를 뜻한다. 쉽게 생각하면 영화 콘티는 글로 되어있는 시나리오를 쉽게 이해하고 촬영을 손쉽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만화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달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달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실제 영화 촬영은 시나리오, 콘티의 순서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장소와 여건에 따라 결정된다. 관객들은 영화를 볼 때 시작부터 끝까지 연결된 감정선을 가지고 관람할 수 있지만, 배우와 스태프들이 영화를 만들 때는 감정선의 점핑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두호 역의 김도윤은 영화 ‘곡성’에서 신부인 양이삼 역으로 나와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바 있다. 김도윤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매커니즘을 잘 이해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콘티뉴어티에 대한 이해가 있고, 앞, 뒤 신을 고민하면서 연기를 해준다는 점은 영화를 시간 순서대로 찍을 수 없다는 현장의 단점을 극복해주었다고, 김도윤 배우에 대하여 윤부희 감독은 밝힌 바 있다.

‘달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달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달인’에서 실제로 가장 첫 촬영은 영화의 마지막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식당 면접 장면이고, 가장 마지막 촬영은 식당 면접 장면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두호가 병수와 대화하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첫 촬영과 마지막 촬영이 완성된 영화에 나란히 붙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보면, 김도윤은 촬영 당시의 감정을 기억하여 연결시켜, 연기를 같은 톤의 감정선의 흐름 속에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흥적인 연기에 대한 활용력도 높은 김도윤의 차후 행보가 궁금해진다. ‘달인’에서 배달의 달인이었던 김도윤이 영화 배우로도 달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희망일까, 희망고문일까? ‘달인’의 엔딩크레딧에는 바이크의 시선으로 바라본 영상이 펼쳐지는데, 앞의 질문은 시간이 지난 후 김도윤이 본인의 시선으로 증명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상욱 문화예술전문기자 (twister@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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