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일 감독의 ‘컴, 투게더(Come, Together)’는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중 ‘비전’ 섹션에서 상영되는 월드 프리미어 장편 영화이다. 40대 가장인 범구(임형국 분)는 어느 날 갑자기 실직하게 되고, 카드회사 영업직원인 아내 미영(이혜은 분)은 영업실적 1위를 하여 보너스를 받고 싶어한다. 재수생인 딸 한나(채빈 분)는 대입 예비 합격자로 초조하게 추가합격을 기다리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의 우리나라에서 살아남으려면 때론 더러운 짓도 서슴지 않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풍토도 있다. 정당하지 않은 행동을 하지는 않더라도, 먹고 살기 힘들다 보면 많은 사람들은 그런 유혹에 흔들리게 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극도의 경쟁사회의 한 단면이다.

‘컴, 투게더’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컴, 투게더’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 경쟁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아등바등한 삶

‘컴, 투게더’는 우리사회의 단면인, 경쟁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아등바등한 삶에 관심을 갖는다. 약한 사람 앞에서는 의기양양해지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세게 나오면 제대로 대응도 못하도 피하는 경향이 다분한데, 영화는 그런 현실을 담고 있다.

정직하게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말이 이젠 진실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영화는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열심히 해도 안되는 사회처럼 느끼거나, 열심히 할수록 더 살기 팍팍해진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것인데, 영화의 등장인물들 또한 그렇다.

‘컴, 투게더’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컴, 투게더’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먹고 살기 힘든 미영은 1등이 되기 위하여 불법영업까지 하게 되지만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한나는 엉겹결에 대학에 합격했다는 거짓말을 하여 심리적인 감옥에 갖히게 된다.

신용카드 영업직인 미영이 신용불량이라는 답답한 현실은 단지 영화 속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 더욱 마음 아프다. 힘든 사람들끼리 상처를 주고, 가족끼리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모습 또한 영화가 현실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 어쩌면 가족이기 때문에 더 솔직해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 허전함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하여, 불필요하고 사소한 일에 집착하게 된다

실직 후 집에서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범구는 층간소음에 항의하며 윗집을 찾았다가 실직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전직강사 호준(김래록 분)을 만나 기이한 하루를 보낸다.

‘컴, 투게더’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컴, 투게더’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에서는 호준은 사소한 일에 몰두하면서 층간소음을 만들어내는데, 관객은 입장에 따라서 호준이 한심해 보이거나 답답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정말 답답한 사람은 호준일 것이다. 허전함과 공허함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일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호준의 답답함을 모를 수 있다.

실패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 권투경기에서 다운을 당해 쓰러진 선수가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전까지 일어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사람들은 응원하면서 기대한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주변 사람이 다운을 당하면 응원하기 보다는 비난을 하며 무시하고 모멸감을 주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은 더욱 무기력해진다.

‘컴, 투게더’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컴, 투게더’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무기력해진 사람들이 불필요하고 사소한 일에 집착하는 것은, 어쩌면 현실회피가 아니라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전에 일어나기 위하여 자신을 가다듬는 것일 수 있다. 혼자는 외롭다고 말하는 호준은, 범구와의 공유와 공감을 통하여 층간 소음을 일으키는 불필요한 행동을 자제하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범구는 단물이 빠지면 다 개새끼고 쓰레기가 된다며 울분에 섞인 말을 한다. 처음에는 극단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되짚어보면 무척 와 닿는 말이다. 경쟁사회에서는 누구나 실패를 할 수 있고 설움과 울분에 아파할 수 있다.

◇ 자신을 위해서 남이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한 명만 없어지면 내가 회사에서 보너스를 받게 되고, 한 명만 포기하면 내가 대학에 합격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면 누구나 마음 속으로, 자신을 위해서 남이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한 번쯤은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미영처럼 현실에서 대부분의 누구나 한 번 이상씩은 가져보았을 마음은,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더 괴로운 마음으로 바뀔 수도 있다. 정말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컴, 투게더’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어느 정도 정답에 대한 힌트도 주고 있다.

‘컴, 투게더’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컴, 투게더’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피해자였던 내가 심리적인 가해자가 된다. 엄밀히 따지면 내가 잘못한게 없는데 큰 죄책감에 휩싸이게 된다. 영화는 미영을 통하여 관객들이 나쁜 마음을 가졌을 때 자신에게 얼마나 더 큰 고통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다. 교훈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척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더 이상 신분상승이 이루어지는 길이 열리지 않는 사회에서 희망은 본래 의미를 잃고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 유경을 부러워하는 한나에게, 나(유경)처럼 말고 너(한나)처럼 살아보라고 충고하는, 한나의 친구 유경(한경현 분)의 조언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긴 여운으로 남는다.

천상욱 문화예술전문기자 (twister@nextdaily.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