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욱 문화예술전문기자 (twister@nextdaily.co.kr)이현하 감독의 ‘커피메이트(Coffee Mate)’는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중 ‘파노라마’ 섹션에서 상영되는 월드 프리미어 장편 영화이다. 육체적 관계없이도 걷잡을 수 없이 들어간 심리적 깊이의 사랑과 연민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기존의 우연한 만남이 주는 관습적인 결과를 따르고 있지 않다는 점이 주목된다.

평범한 가정주부인 인영(윤진서 분)은 주로 의자를 만드는 목수일을 하는 희수(오지호 분)를 카페에서 만나 커피메이트가 되기로 한다. 약속을 하지 않은 채 카페에서 만날 때만 이야기하는 친구가 되기로 하는데, 전화나 문자도 하지 않고 밖에서는 만나지 않지만, 커피숍에서는 일상의 이야기부터 비밀 이야기까지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회상 속의 회상을 통하여, 마음 깊숙한 곳의 이야기를 꺼낸다

‘커피메이트’는 내레이션 같은 인영의 대사로 시작한다. 커피숍에서 인영과 윤조(김민서 분)의 대화를 통하여 인영과 희수(오지호 분)가 만났던 회상의 시간으로 이동하고, 희수가 인영에게 하는 이야기를 통하여 희수의 회상 속 학창시절의 시간으로 다시 이동한다.

‘커피메이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커피메이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이야기 속 또 다른 이야기로 들어가면서, 다른 사람의 내면 속에 있는 또 다른 내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또한, 한층 더 들어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두 사람이 데이트하는 프로그램에서, 여자 주인공이 데이트 장면을 찍은 영상을 보면서 스튜디오 토크를 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커피메이트’는 무척 잔잔한 대화로 진행된다. 만남이 주는 거친 파격을 상상하는 관객에게는 답답함을 선사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정신적 교감이 육체적 교감 이상의 파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오지호는 희수 역을 맡으면서, 인영과 처음 대화를 나누었을 때 교과서를 읽듯,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하게 말하는 설정을 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런 점은 만남에 대한 순수성 강조하면서 희수 자체의 순수성도 어필한다. 능수능란한 작업이 아니라는 이미지를 전달하게 되는데, 수줍고 능숙하지 못한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커피메이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커피메이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커피메이트’의 천천히 하는 대화는 주로 커피숍에서 진행되는데, 인영과 윤조, 인영과 희수로 대상이 바뀌기는 하지만, 2인극의 연극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대화를 통한 내면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연극으로도 잘 표현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훔쳐보는 것이라면, ‘커피메이트’는 다른 사람의 비밀이야기를 몰래 들으며 훔쳐보는 것이다. 회상 속의 회상으로 들어가면서, 훔쳐보는 사람을 다시 훔쳐보는 극적인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예정되지 않은 만남이 주는 설렘의 판타지

커피숍에서 누군가 대화가 통할 것 같은 사람을 만나는 설렘은 ‘커피메이트’를 로맨틱하게 만든다. 휴대폰이 없던 시대처럼 만남의 조건을 설정하고, 비밀에 대한 공유를 둘 만이 하면서, 편지를 남길 때도 둘 만 알아볼 수 있는 글자를 사용한다.

‘커피메이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커피메이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예쁘고 멋진 사람과의 만남, 육체적으로 끌리는 사람과의 만남 이상으로 내면 깊숙한 곳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판타지를 품고 있다. 내 안에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나는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하여 발견할 수도 있는데, ‘커피메이트’는 그런 모습을 담고 있다.

직간접적인 불륜의 이야기 내포하고 있고, 다른 사람의 호의도 의심하게 만드는 열등감, 자격지심, 서러움을 간직한 작은 복수심, 그리고 자기 정당화와 자기 연민까지, ‘커피메이트’는 설레는 마음 이면의 불안감에도 관심을 가진다.

‘커피메이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커피메이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보통 심리적, 정신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의 진도 차이가 너무 벌어지면 사랑이 지속되기 힘든 것이 일반적이다. ‘커피메이트’에서 인영과 희수는 정신적인 면만 극도로 진도가 나갔지만, 두 사람은 마음의 진도는 비슷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오래 지속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사랑에는 두 사람 간에 공유하고 있는 연결의 갯수와 그 강도의 끈끈함이 중요한데, ‘커피메이트’에서 인영과 희수는 외골수의 강력한 연결로 사랑이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추억의 장소도 커피숍 하나이다. 이런 점은 영화 속에서 순수함애 대하여 이야기하는 대사와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다.

◇대사를 통하여 감독이 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영은 여자들이 수다떠는 이유가 “나는 불행하지 않다”, “적어도 너희들 보다는 행복하다”는 것을 은근 그 와중에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럼 ‘커피메이트’에서 인영이 수다를 떠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영은 대학시절 프랑스 배낭여행을 할 때, 말이 통하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율배반적인 이야기 같지만, 되짚어 생각해보면 통하는 면이 있다.

이현하 감독은 ‘커피메이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를 통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메시지를 곳곳에서 전달하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게 생각된다. 음모론, 자기만의 강박, 비밀기지를 가진 느낌은 아마도 감독이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표현처럼 느껴진다. 막연한 두려움과 실체가 있는 두려움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커피메이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커피메이트’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순수는 위험한 것으로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고, 명분이 정당하면 뭐든지 할 수 있는게 순수라는 윤조의 대사 또한 감독의 직접적인 목소리처럼 들린다. 명분이 정당하면 뭐든지 할 수 있기에, 순수한 사람들이 혁명가가 된다는 이야기의 인용은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한다.

‘커피메이트’는 2인극의 연극 같은 느낌도 주고, 소설 같은 느낌도 주고, 일기장 같은 느낌도 주며, 낭송 테이프를 듣는 느낌도 준다. 잔잔한 대화 속에서의 디테일한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면 ‘커피메이트’는 영화관에서 관람하여야 느낌을 더욱 제대로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장르의 느낌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커피메이트’가 가진 고유의 영화적 매력을 느껴보기를 권한다.

천상욱 문화예술전문기자 (twister@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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