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서 아침을 여유롭게 먹었다. 하나 먹을때마다 직원이 와서 자꾸 정리를 해준다. 그러고보니 레스토랑에서도 계속 그랬다. 먹고 입에 든거 다 씹기도전에 접시를 치워준다. 성질급한 레스토랑인가 했더니 식당마다 그런다.

테이블을 바로바로 정리해주는것이 예의인가보다. 빵가루를 흘렸더니 미니청소기를 가져와서 드르륵 치워준다.
밥먹는 도중에 산만스럽지만 할수없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는수밖엔...

식당직원이랑 친해져서 이것저것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내일 쿠바로 갈거라 했더니 구바라 한다. 아제르발음으로 Q는 ㄱ으로 읽는단다. 아제르말은 터키말하고 비슷한 부분이 많다. 러시아로부터 독립한지 오래되어서 젊은이들은 러시아어를 못하는듯 하다.

우리가 일제잔재를 거부하듯이 아제르에선 러시아를 거부하는듯 보인다. 길거리 어디서도 크릴문자를 볼수가 없다.까막눈을 면해보겠다고 크릴알파벳을 열심히 외워왔는데 다 잊어버리게 생겼다. 내 기억력으로는 한달이면 다 잊어버릴것이다.

10시에 호텔로 차를 가져오기로 했는데 10시가 되었는데도 안온다. 렌트카사무실에 전화를 하니 왠 여자가 뭐라뭐라 아제르말로 œX라꽐라거린다. 호텔프론트에 가서 물어보니 렌트카직원이 9시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단다.

객실 전화기는 곰국을 끓여먹을 작정인가? 융통성이라곤 빵점이다. 공용주차장에 가서 차를 체크하고 받았다. 5모낫을 내면 내일아침까지 주차해도 된다해서 주차아저씨에게 5모낫을 드리고 눈도장 콱 찍었다.
영수증을 받아야 했는데 뭔가 찜찜하다. 렌트카직원도 영어가 시원찮아서 우리가 제대로 통했는지 아리송하다.

하여간 차를 받아서 도로로 나오니 기분은 좋다. 복잡한 바쿠시내를 벗어나서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남편의 질주본능이 다시 살아난다. 질주본능은 늙어죽지도 않나보다. 이제 살살 다닐 나이도 되었거만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는데 경찰이 우리차를 세운다. 앞차따라 얌전히 가던차라 왜 잡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앞차따라가는데 왜 붙잡느냐고 뭐라뭐라했더니 영어할줄 아는 직원을 데리고온다. 과속으로 잡혔단다. 우리가 수긍을 안하니 사무실로 가자고 한다.

사무실안에 들어가니 모니터에 찍힌 우리차를 보여준다. 16분전에 과속카메라에 찍힌 것을 보여준다. 두번이나 카메라에 찍혔다.

내가 관광객이고 오늘 렌트한건데 이럴수가 있냐고 뭐라했다. 경찰이 우리를 서장님방으로 데려간다. 한국서 온 관광객인데 억울하다고 뭐라했더니 웃으면서 봐주신다. 경찰서 문밖까지 나와서 배웅을 해주신다. 난 연신 초크사울을 외쳤다.

경찰에 한번 잡히고나서 보니 과속카메라가 수시로 보인다. 남편한테 제발 속도줄이라고 폭풍잔소리를 퍼부었다.
잔소리가 먹힌다. 과속카메라와 경찰에게 고맙다.

고부스텐암각화를 찾아서 가는데 철길이 가로막는다. 동네사람에게 길을 물어보니 멀리 돌아가란다. 차를 돌리는데 한 아저씨가 가는 방향이라고 타서 알려주겠단다.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는데 뜻이 통해서 고부스텐 암각화에 무사히 도착했다.

암각화는 4만년부터 5천년전 사이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돌로 새긴 그림들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암각화도 대단하지만 그림을 새긴 바위들이 예술이다. 제주도해안트래킹할때 만났던 바위들을 만나는듯 반갑다. 신이 만든 아름다운 바위들에 새겨진 원시인들의 손길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암긱화를 보고 머드볼케이노로 갔다. 가는 길이 어찌나 험한지 4륜구동을 렌트하기 잘했다. 길들이지 않은 말을 탄 기분이다. 험하게 운전하는 남편조차 조심하며 살살 달린다.

겨우 힘들게 찾아서 볼케이노위에 올라서니 두소년이 강아지를 데리고 있다. 두손으로 진흙장난을 쳤는지 손이 진흙투성이다. 뭔가를 설명해주고 싶어하는데 도저히 알아들을수가 없다.

진흙이 마치 살아있는듯 꿈틀대면서 계속 뽀골뽀골 올라온다. 망연자실 보고 있었더니 소년이 손을 쑥 넣는다.
따라서 넣어보니 시원하다. 같이 진흙장난치고 놀았다.

대형 분화구안에는 수없이 많은 진흙화산들이 꿈틀거리며 뿔룩뿔룩거린다. 멍게처럼 작은것도 있고 낑낑거리고 올라갈만한 큰 언덕도 있다.

갑자기 한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진흙을 한덩이 뜯어서 비닐에 옮겨담았다. 오늘부터 저녁마다 화산진흙맛사지를 할 작정이다. 땅속깊은 곳에서 갓 솟아난 진흙은 미네랄덩어리임이 분명하다.

차를 타고 험한 길을 다시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야나르닥으로 가는 길에 석유를 채유하는 장면을 자주 본다. 한때 세계최대의 산유국이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야나르닥은 땅속에서 계속 가스가 나오는 곳이어서 불이 꺼지지않는 곳이다. 불의 나라 아제르바이잔이라는 이름이 허명이 아니다. 더워 죽겠거만 사진은 남겨야 할것 같아서 뜨거운 열기옆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폼잡았다.

야나르닥을 보고 바쿠로 돌아와서 주차장으로 갔다. 아침에 5모낫맡겼던 아저씨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영어안통하는 아저씨가 아몰랑 버티신다. 내가 아침에 5모낫 맡길때 내일아침까지 된다고 했다고 고래고래 설명했다.

아저씨가 아침주차아저씨한테 전화를 하시더니 바꿔준다. 아침아저씨 말이 6시가 되면 새로 5모낫을 내야한단다.
그럼 내일아침까지 세워도 된단다. 전화를 끊고 5모낫을 드리면서 약속하자고 새끼손가락 걸자고 했더니 아저씨가 갑자기 얼굴이 벌개지신다.

옆에서 훈수두던 젊은 보안요원이 배를 잡고 웃는다. 아제르에서 새끼손가락은 결혼을 약속히는거란다. 그래서 바로 남편한테 사올 인사를 했다. 아저씨가 웃으며 넘넘 좋아하신다. 이쁜건 알아가지고...좋단다.

하루종일 시원찮게 먹었더니 제대로된 식사가 그립다. 분수광장으로 가서 바쿠 2위식당으로 갔다. 스테이크와 스프링롤을 시켰다. 기대를 저버리지않고 맛있다.

호텔로 돌아와서 빨래하고 목욕하고 머드맛사지를 했다. 욕조에 앉아서 온몸에 머드를 바르고 문지르고 한참 놀았다. 물로 씻어내는데 예상대로 보들보들거린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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