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서 고성능 게임을 원활하게 즐길 수 있다. 모바일 게임을 둘러싼 로우레벨 API 경쟁이 본격화됐다. 모바일 시장을 이끌고 있는 애플과 구글이 자체 운영체제와 파트너의 부품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그래픽 관련 API 체제 정비에 나섰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세계 스마트폰 운영체제별 최종 사용자 판매량에서 구글 안드로이드는 84.1%를, 애플 iOS는 14.8%를 차지했다. 두 운영체제만으로도 약 99%를 점유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두 축의 행보에 따라 모바일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초창기 스마트폰에서의 그래픽 성능은 부차적이었다. 휴대폰의 본래 역할인 커뮤니케이션에 충실하면 탁월한 제품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LTE로 촉발된 네트워크 진화와 모바일AP, 디스플레이 등 하드웨어의 폭발적인 성능으로 엔터테인먼트적 성향이 두드러졌다. 최근에는 5G와 가상현실(VR) 등 신 시장 개척에 거대IT공룡들이 각축을 벌임으로써 그래픽 성능은 꼭 필요한 요소로 부각됐다.

PC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운영체제(OS)가 전 세계적으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면서 다이렉트X가 게임 시장을 주도했다. 다만, 다이렉트X 11 이후 차기 버전 출시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새로운 대안들이 모색됐다. AMD의 ‘맨틀’이 대표적이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이렉트X 12를 발표, 최근 관련 게임들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모바일 진영에서는 다이렉트X 대신 오픈GL ES가 역할을 대신했다. 다양한 하드웨어와 플랫폼을 지원했기에 최적의 선택지였다.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 역시 오픈GL를 활용했다. 다만 이러한 장점이 발목을 잡았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게임을 구동시킨 후 어떤 명령을 내리게 되면 이 명령을 CPU가 받게 된다. CPU는 사용자의 명령을 받은 후 결과를 반영하기 위해 자신이 속해있는 부품들 중 그림 그리기 담당인 GPU에게 명령을 전달한다. 이 때 사용되는 언어가 오픈GL ES인 셈이다. 오픈 GL ES는 일종의 명령어 모음(API)이다.

오픈GL은 다양한 하드웨어를 모두 섭렵해야 한다. 즉, 다양한 언어를 모두 습득하고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해석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그래픽 표현이 진화하면 할수록 해석해야 할 명령도 다소 복잡해졌다. 언어도 다양한데 풀어야될 번역본도 많아진 셈이다. 이를테면 3D 렌더링을 위해서는 너무 많은 명령어를 풀어줘야 했다.

결국 오픈GL ES는 많은 오버헤드를 일으킬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성능 저하와 전력 소모가 따르게 됐다. 명령을 내리는 CPU도 머리 아프긴 마찬가지다.

애플은 대안으로 2014년 애플 iOS8, 아이폰6와 함께 ‘메탈 API’를 발표했다. 범용성이 높은 오픈GL과 달리 ‘메탈’은 애플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최적화됐다. 해야할 일이 줄어들고 결제과정이 단순해지면 당연히 일의 능률은 오를 수밖에 없다.

메탈 API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단순히 그래픽 성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GPU에 직접 접근함으로써 CPU의 부담을 덜어주기도 하고, 그만큼의 전력 소모량을 줄일 수 있다. 발열도 낮출 수 있다. 메탈 API로 개발된 게임을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는 더 오랫동안 쾌적하게 즐길 수 있게 된 셈이다.

메탈 API 활성화를 위해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콘텐츠도 중요하다. 애플은 에픽게임즈와 디즈니, 게임로프트, 징가, 스퀘어, 유니티 등 쟁쟁한 업체들과 손을 잡았다. 최근에도 메탈 적용 게임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구글 안드로이드 입장에서는 애플보다 더디게 움직였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수직 통합화된 애플과 달리 안드로이드는 파편화가 심각했다. 어쩌면 프리미엄을 고수하는 애플의 입장과 저가형 모델까지 섭렵해야 하는 구글 입장이 달라서일수도 있다.

구글은 마침내 지난 18일 개최된 구글I/O에서 차세대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N이 불칸 API를 지원할 것이라 밝혔다. 앞서 여러 업체로부터 차기 안드로이드 불칸 지원이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구글도 지난 3월 첫 번째 프리뷰를 내놓으면서 개발자들에게 불칸 지원을 알리기도 했다.

‘불칸’은 오픈소스 그래픽API 표준화 단체인 크로노스그룹이 주도하고 있는 그래픽 명령어 모음 중 하나다. GPU와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로우레벨 API이기도 하다. 메탈과 마찬가지로 높은 그래픽 성능과 낮은 전력소모량을 기대할 수 있다.

구글 안드로이드N이 본격적으로 불칸 API를 지원해, 향후 출시되는 안드로이드용 게임의 그래픽 품질도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모바일 관련 하드웨어 업체들도 불칸에 전폭 지원하고 있다. GPU를 설계하는 ARM과 이미지네이션, 퀄컴, 인텔 등도 불칸 지원에 나섰다. 게임업계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구글이 불칸을 지원함으로써 애플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해졌다. 생태계 확장을 위해서도 개발자들을 끌어모아야 한다. 애플이 한 발 앞서 관련 디바이스와 게임 콘텐츠를 밀고 있기는 하지만 높은 점유율을 앞세운 구글이 빠른 시기에 정상 궤도에 오를 가능성도 높다.

김문기 기자 (moon@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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