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지나가는 산과 들에는 꽃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우리는 아무 걱정도 없이 이 계절의 꽃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꽃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계절이 바뀌는 까닭이요. 다음 꽃이 피는 까닭이요. 아직 이 땅의 꽃 이름을 다 알지 못한 까닭입니다. 꽃 하나에 추억과, 꽃 하나에 사랑과, 꽃 하나에 쓸쓸함과, 꽃 하나에 동경과, 꽃 하나에 시와, 꽃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윤후명의 ‘꽃’으로 바꿔 상상하는 독서의 시간이었다. 학창시절 식물학자를 꿈꿨던 초로의 소설가는 인생을 아우르는 추억과 함께 꽃과 식물의 사연을 찾아 긴 여행을 했다. 자연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관심들이 어떻게 그의 시와 소설에 녹아 날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들이다. 오랜 벗 표성흠 선생이 사진을 제공했고, 김의규 화가는 멋진 꽃그림들로 도움을 주려했으나 시공을 넘나드는 문자들의 표현만으로 집필한 고집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그러한 시도는 오히려 호평을 받았다.

식물은 위기가 닥치면 꽃을 피운다. 자기가 죽을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든 후손을 남기려는 눈물겨운 몸부림이다. 그러니까 환경이 갑자기 달라진 게 까닭이겠다. 흔히 난을 기르다가 그만 돌보지 않고 버려두었더니 놀랍게도 꽃을 피우더라는 얘기는 여기에 연유한 것이다. (227쪽)

서울의 봄을 여는 꽃이 매화, 산수유, 영춘화, 목련에 앞서 노루귀라고 정의하며 계절에 따라 차례로 이어지는 꽃 이야기는 작약·능소화·원추리·도라지꽃·옥잠화의 여름을 지나 국화·구절초·쑥부쟁이·쪽·엄나무·감나무의 가을을 아우르고, 풍란·유자·제라늄·베고니아·설중매·동백의 겨울에 이른다. 늦봄의 절정을 빛내주는 모란과 작약의 차이는 물론 함박꽃이 작약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알려준다. 오월의 모란을 기다리며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야기하던 영랑은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라고 노래했지만 윤후명은 소나무 아래 개불알꽃과 요강초를 익살스럽게 읊조리며 더 늦은 봄꽃을 덧붙이는 여유도 부린다.

모란은 중국이 원산지이다. 흔히 모란과 작약을 혼동하는데, 같은 미나리아재비과에 들지라도 모란은 나무이며 작약은 풀이다. 아마도 둘 다 꽃이 매우 비슷하고 큰데다 중국에서 모란을 목작약이라고도 불렀기 때문인지 모른다. 해마다 영랑처럼 모란이 피기를 기다린다. 그 향기에 취해 내 삶의 보람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모란은 다른 꽃들을 압도하며 열흘가량 피어 있다가 그 큰 꽃잎이 어느 날 속절없이 한꺼번에 스륵스륵 떨어져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55쪽)

복주머니 꽃이란 대체 이름이 잘 통하지 않는 개불알꽃을 시작으로 거지덩굴, 노루오줌, 광릉요강꽃, 뚱딴지, 말오줌나무,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미치광이풀, 소경불알, 애기똥풀, 여우오줌, 중대가리나무, 큰도둑놈갈고리, 홀아비꽃대와 같은 민망한 꽃 이름들과의 만남도 신선했다. 김유정 소설의 ‘동백꽃’이 우리가 흔히 아는 동백꽃이 아니라 노랗게 피는 생강나무 꽃을 부르는 강원도만의 이름이라는 사연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설명한다. 소설가답게 ‘협궤열차’의 사연을 인용하여 회화나무를 설명하고, 소설 ‘가장 멀리 있는 나’를 통해 보여주는 남해섬의 3자 유자·치자·비자를 이야기, 또 다른 소설 ‘별들의 냄새’를 인용한 아이비 덩굴과 고흐의 무덤 이야기, 러시아 숲 갈리나 나무 이야기에서는 그 상황에 적절한 소설 ‘여우 사냥’을 곁들이는 등 액자 형식으로 상황을 표현했다.

춘란이 자생하는 델 가보면 대부분 마을 가까운 동남향 땅에 해를 가려주는 소나무가 있고 그 가까이 저수지가 있다고 들었다. 해를 적당히 가려준다는 것은 일조량에 관한 조건이며, 저수지가 있다는 것은 습도에 관한 조건이다. 그런데 마을의 개 짖는 소리나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 정도의 거리에서 자라지 심심산골에서는 자라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잎이 갸름하게 쪽 빠진 춘란, 한란 말고도 우리 자생란이 많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개불알꽃과 광릉요강꽃을 비롯하여 해오라기난초, 잠자리난초, 오리난초, 병아리난초, 손바닥난초, 나도잠자리난초, 산제비난, 제비난, 흰제비난, 큰제비난, 큰방울새난, 천마, 금난초, 은대난초, 은난초, 닭의난초, 타래난초, 방울새란, 붉은사철란, 탈사철란, 애기사철란, 난리난초, 나나벌이난초, 새우난초, 금새우난, 약난초, 감자난초, 석곡, 콩자개난, 흑난초, 지네발란, 풍란, 나도풍란······ 이들이 다 난이었다. (83쪽)​

물망초를 본적이 있는가? 6월 들어 덩굴장미가 시들 무렵이면 아침마다 보랏빛 청초함을 뽐내던 양달개비도 갑자기 개화를 멈추는데, 그것이 바로 ‘물망초’다. 조선 전기의 학자 강희안의 ‘양화소록’에 꽃들의 등수 매김과 근거 없는 기록을 향한 반박도 적절했다. 그 향기가 백리를 간다는 백리향과 그보다 더 멀리가는 천리향이 상서로운 향기라는 의미의 서향으로 불리는 사연, 한 때 작가 자신이 만리향으로 알고 있었던 나무가 제주 방언 ‘똥낭’에서 똥나무로 다시 돈나무로 불리게 되었다는 사연도 재미있다. 열대 아메리카 원산의 란타나가 일본에서 칠변화로 불리다가 국내에서 ‘칠면조’로 왜곡된 황당한 사연도 있다. 물론 이러한 문학적인 기록들을 벗어나 식물도감이나 여타 자료를 찾아 꽃과 식물을 학술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독자 스스로의 몫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생명나무를 키운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소년 제제도 그걸 잘 보여준다. 아니다. ‘무진기행’의 주인공이 밤길을 가면서 나무들의 모습이 너무 무서운 나머지 이 세상에 나무라는 게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했던 것이 생명나무의 모습을 더 절실하게 부각시킨다. 자기의 생명나무를 갖지 못한 사람은 하늘을 향해 기도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작은 풀 한 포기, 작은 나무 한 그루가 귀중한 것이다. 식물만이 생산자이고 그 밖의 모든 것들은 소비자라는 과학적인 견해를 떠나서, 우리는 태어난 이상 하늘을 우러를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생명나무는 또한 하늘을 재는 잣대가 아니겠는가. 회화나무는 선비나무라고도 하여 옛 서원에서 귀하게 여겼다. 도산서원의 고목이 대표적으로 남아 있다. (159쪽)

섬노루귀나 섬백리향을 예로 흔히 식물 이름 앞에 ‘섬’이 붙으면 크기가 더 크고 생명력이 강하며 그 ‘섬’은 울릉도를 뜻하기 쉽다는 설명과 제주도에서 자라는 식물 이름 앞에는 ‘한라’가 붙는 다는 지혜도 가르쳐 준 책이다. 성탄꽃과의 여러해살이 풀인 ‘부자’로 만드는 사약의 이야기나, 꽃과 잎이 번갈아 피어나 서로 그리워하게 된 상사화, 추사가 쓴 봉은사 판전 글씨나 같은 절 ‘묘전’이 상원사 자객으로부터 세조를 구한 고양이의 전설을 담고 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시경을 읽으면 생각에 잘못이 없게 된다는 사무사(思無邪)의 가르침을 주신 공자님 말씀을 늪이나 못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일년초 ‘마름’ 하나를 설명하는 데 인용한 것도 상상력에 좋은 기운을 불어 넣어준다. 11월의 감나무와 곶감에서 우리의 전래 동화를 엮어 설명해 주는 재미도 빠질 수 없는 읽기의 즐거움이다.

꽃 한 송이의 시간 속에는 모든 시간이 모여 있다. 슬픔과 괴로움의 시간, 기쁨과 즐거움의 시간, 우주가 비롯된 저 태고의 시간, 지금 우리에게 나타나 있는 현재의 시간······ 모든 시간이 한 송이 꽃을 피우고 있다. 한 개의 모래알에, 아니 한 개의 티끌 속에 우주가 있다고 했듯이, 한 송이 꽃에 모든 시간이 있다. 공룡의 시간도 있고 인간의 시간도 있다. 인과응보라는 어려운 말이 새삼 필요할 까닭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뜰 한구석에 피어 있는, 한 해의 마지막 꽃송이를 보며 아득한 시간 속을 들여다본다. (187쪽)

봄으로부터 시작한 우리 꽃 이야기는 여름을 지나 가을로 향하면서 작가의 여행과 더불어 지구적 시선으로 범위가 확장된다. 티베트의 감자꽃, 바이칼 호수에서 만난 해당화, 엉겅퀴, 애기똥풀, 분홍바늘꽃, 톱풀, 패랭이, 기린초, 장구채, 오이풀, 무릇, 원추리······ 몽골의 초원에서 만난 물싸리, 패랭이, 개양귀비, 투구꽃, 물매화······ 해발 4330m 티베트 스미라호에서 만난 용머리꽃, 유채꽃, 별꽃, 도라지꽃, 상사화, 꽃댕강나무, 맥문동, 참취, 벌개미취, 미역취, 노랑어리연꽃, 부레옥잠······, 터키 거리의 무궁화, 자귀나무, 능소화, 접시꽃, 백일홍, 분꽃, 봉숭아, 금잔화, 해바라기, 석죽이라 불리는 패랭이꽃과 가을 풀벌레 소리, 소나무가 있는 야산의 풍경들, 범부채꽃, 봉숭아, 도라지, 다양한 취꽃들, 덩굴을 뻗은 유홍초, 연보랏빛 쑥부쟁이, 연분홍 무릇꽃, 미색 왕고들빼기, 코스모스, 과꽃에 용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소나무와 전나무의 묘사까지 그 모든 것에서 저자의 향수가 묻어나는 아름다운 나열이 아닐 수 없다. 독자를 향해 뭔가 가르치려 하지 않고, 작가 자신이 몰랐던 꽃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이나 실수를 바로 잡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아 편안하고 만만하게 읽어진다. 모두가 비관적인 기후 변화에 대한 윤후명 선생의 긍정적인 시선은 달콤하다. 겨울에도 영원히 푸른 생명을 가르쳐주는 저 풀과 나무들이 가까이 함께 있으므로 봄을 꿈꿀 수 있고, 희망과 소생을 믿을 수 있다는 표현은 자연을 인생의 교과서로 대하는 아름다운 위로의 한 마디다.

나이를 먹을수록 겨울이 더욱 지겨워지는 것과 비례하여 자연에 눈을 뜬다. 자연이 가장 위대한 교과서라는 말을 나이 들어서야 깨닫게 되는 것은 슬픈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우리들 인간도 결국 자연의 일부인 바에야 자연에 눈 뜬다는 것은 인간을 볼 수 있다는 뜻이 아니랴. (259쪽)

초판본을 구입해 벌써 여러 번 밑줄을 긋고 메모하는 바람에 책이 너덜너덜해졌다. 책을 읽는 순간 독자의 처지가 자신을 합리화시키거나 이기적인 위안과 억지스런 감동을 자아낼지도 모를 일이다. 먼 훗날에 이 책을 다시 펼쳤을 때 오늘 이 순간의 느낌을 되살릴 수 있을까? 사막의 어떤 풀은 물을 찾아 뿌리를 몇 킬로미터나 뻗어나간다고 한다. 식물은 생산자이고 동물은 소비자라는 진리를 마음에 담고 살아오신 윤후명 선생님의 글에서 꽃은 우리를 뇌쇄시키려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해 눈물겨운 몸짓을 보였을 뿐이라는 깨달음을 읽었다. 역경에서 피는 꽃이 아름답다던, 모든 꽃은 고난을 이기고 피어난다던 신영복 선생님의 가르침이 오버랩 되는 순간이다. 꽃 이야기를 읽고, 저자를 읽고, 고된 현실을 견디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누구나 꽃이라는 희망도 읽었다.

안중찬 ahn0312@gmail.com 장거리 출퇴근길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관련 11권의 전문 서적을 집필하고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이다. 다양한 분야 여러 직업을 경험하면서 삶에 대한 애정과 추억이 많아 세상이 여전히 따뜻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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