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한 기업이 007시리즈 '스펙터' 제작진에게 ​자사의 제품을 영화에 노출시켜 달라는 조건으로 홍보비 포함 5,500만 달러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사실이 이메일 해킹을 통해 밝혀졌다. “제임스 본드는 오직 최고만을 사용한다.”가 이유였다는데, 초일류를 표방하며 대마불사의 신념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그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가습기 사태로 국내 소비자의 공분을 사고도 근원적인 문제 해결 없이 땜질 사과로 버티고 있는 옥시의 미래는 또한 어떻게 변해갈까?

논어에서는 올바른 목표를 선(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올바른 과정을 미(美)라 하며, 목표와 과정이 더불어 올바른 것을 일컬어 진선진미(盡善盡美​)라 한다. 경영에 예술을 융합하자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반복되어 왔지만 단순한 융합의 시도는 비빔밥을 원했으나 개밥을 내놓을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예술과 경영의 조화로움을 강조한 다양한 시도들을 일단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위험성 때문이다. ‘미래경영의 아트코어’는 진정한 비빔밥을 고민하는 경영자에게 진중하게 추천할 수 있는 일관성 있는 대안의 안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예술경영학을 전공한 저자가 각광받는 유럽의 명품들에서 발견한 예술적 풍요로움​을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로 규정했는데, 이것은 논어의 진선진미(盡善盡美​)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좌뇌로 선(善:Agathos)한 것을 추구하고, 우뇌로 미(美:Kalos)를 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다른 예술적 감각(Senso)까지 덧붙여 달라는 매력적인 제안이다.

스티브잡스의 성공은 모든 이에게 개인용 컴퓨터를 보급하고 싶은 선한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루이 비통의 성공 또한 깨지기 쉬운 것들을 안전하게 담아야 한다는 선한 동기에서 출발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도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를 최대한 편리하게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며 구글을 시작했다. 메디치가 유럽의 16개 도시에 은행을 설립한 것은 현물 지참에 따른 도난과 추가적 위험으로부터 불상사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정주영 회장이 모래벌판에 조선소를 세운 것도 선한 동기였다. 엘론 머스크는 특허를 통한 돈벌이에 몰두하지 않고 그저 자동차 매연 없는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정신으로 테슬라를 선보였다. 전기자동차를 설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력은 그의 좌뇌에서 비롯되었지만 아무도 쉽게 나서지 못하는 전기자동차의 상용화의 상상력은 그의 우뇌에서 발현되었다.

정주영 회장이 이처럼 기개에 찬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기반에 자리하고 있던 것이 바로 ‘센소’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다 보는 500원 짜리 지폐에서 아무나 조선이 16세기 최고의 조선 강국이었다는 장점을 발견해내고, 또 그것을 비즈니스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센스’가 아닌 남다른 예술적 감각인 ‘센소’는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유럽이 르네상스 정신을 그들만의 센소로 계승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으로 돌아가 우리만의 장점을 발견하는 센소를 찾아야 한다. 내면의 부끄럽지 않은 아름다움을 가질 때 우리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일 것이다. (121쪽)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은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했다. 한 번 들으면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우리가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는 사기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기관을 유혹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 예술의 가치에 대한 이 역설을 깨닫고 고부가가치의 럭셔리 브랜드들을 살펴보자. 문화와 예술이 자연스러운 일상이고, 그 가치를 인정하고 소비하되 낭비라 생각하지 않는 사회에서 정직하게 키워진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문화예술 기반의 혁신은 마치 사기꾼의 감각처럼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통해서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기업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잘 만들어진 아름다움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사람들이 늘 좋아하는 그런 가치로 계승된다는 것이다. 루이비통도 몽블랑도 모두 다 아트코어에 집중했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길이 열린 것이다.

음악 역사상 최고의 아트코어가 바로 파헬벨의 카논이다. (중략) 이렇게 인간이 늘 좋아하는 것들은 항상 역사 속에 숨어 있다. 기업경영도 마찬가지다. 르네상스적 혁신을 이룬 후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집중해 찾아야 할 점은 회사의 고유한 핵심 사업을 누구나 좋아할 변치 않을 아름다움인 통주저음으로 준비해 놓아야 한다. 그것이 ‘절대권력’의 핵심사항인 것이다. (156쪽)​

전체 네 파트 중에서 세 번째 파트에 해당하는 ‘세상을 지배하는 다섯 가지 아트코어’는 책의 절반을 아우르는 핵심 콘텐츠로 깊은 성찰이 담겨있다. 시대별 특성을 담은 아트코어의 세분화는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 인상주의 시대의 역사와 예술사적 특징을 심도 깊게 분석한다. 서구 명품(Made in Europe)의 기반인 예술성과 경영의 조화로움이 어떻게 고부가가치를 이끌어 왔는지 역사적 시선으로 섬세하게 해부한다. 이 부분은 유럽의 문화사이자 각 시대별 예술의 태동 배경과 성과 및 지속성에 관한 이야기로 한 사람의 뇌에서 숙성된 지식의 산물이다. 일상의 언어에서 벗어난 특별한 언어(음악)와 일상의 몸짓에서 벗어난 특별한 몸짓(무용)을 이해하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며, 기초 교양 안내서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프라고나르의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은 CEO가 가져야 할 자질 중 아주 중요한 요소다. CEO의 통찰력이 기업의 미래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통찰력을 이해하기 위해 예술사조의 전개를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신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꾼 이성의 시대인 르네상스 다음에는 그것에 대한 반역을 꿈꾼 매너리즘 감성의 시대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더욱더 감성적이고 인공적인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가 찾아왔다. (중략) 예를 들어 제품에 관한 소비자의 반응이 감성적이고 인공적인 것을 좋아한다는 평가를 빅 데이터의 지표에서 분리해낸 현시점이 바로크적 소비형태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CEO의 중요한 자질이다. 이런 자질을 통찰력이라 말하는 것이다. 통찰력은 예술적 감각 센소(senso)를 가질 때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168쪽)

유럽 패션업계가 한때 일본 섬유 회사들의 추적을 받으며 위태로웠지만 지금은 일본 제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급 브랜드로 시장을 지배하는 원인이 무엇일까? 스위스 시계 산업과 미국 할리데이비슨의 모터싸이클도 1980년대 일본 기업에 쫓겨 생사의 기로에서 좌절하는가 싶었지만 지금은 끄떡없이 아성을 지키고 있다. 말로만 명품과 글로벌 경쟁력을 논하기에 앞서 유럽의 역사와 예술 세계에서 찾아낸 가치창조의 핵심 아트코어에 주목하고 이해해야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이 선택하고 지켜온 아름다움 속에 경영자들이 고뇌하며 찾고 있는 마인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점 말이다. 성장이 끝난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각광 받는다는 아트코어의 진리를 읽어내야 한다.

로코코의 쾌락성과 낭만주의의 아이덴티티인 개인의 소중함 속에서 힐링 받고 싶어 하는 본능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개인은 로코코와 낭만주의를 아우르는 형태로 작은 사치를 꿈꾸며 자신의 소중함을 위해 행동하는 소비자의 형태를 보이지만 정치와 경제는 바로크가 갖는 위엄과 권위를 법질서라는 개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CEO의 독단은 신으로부터 위임이라도 받은 것처럼 여전히 유효하며, 사원은 이런 CEO의 충실한 신하로서 값싼 임금으로 봉사해야 한다는 구시대적 발상에 묻혀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글로벌한 시장 경제에서 한 치도 앞으로 못 나가고 정체되고만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241쪽)

클래식 콘서트의 진행자로도 활약하는 저자는 성공 기업들의 여섯 가지 사례를 분석하여 독자가 보다 친근하게 아트코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예를 들어 현대카드의 아트코어는 모회사의 장점을 아이템으로 회귀 전략(르네상스)을 통해 소비 패턴을 분석한 VVIP 마케팅(바로크)에 집중하고, 통일된 디자인으로 BI를 확보(고전주의)하고, CI 리뉴얼 전략(인상주의)으로 혁신적인 기업 문화를(낭만주의) 확립했다. 애플은 기업 이미지에서 혁신(르네상스)을 강조하면서, 강렬한 로고(인상주의)를 기반으로 여러 IT기기를 모두 접수(바로크), 단순한 디자인으로 시스템을 최적화(고전주의) 시킨 뒤에 감성마케팅(낭만주의)으로 사용자를 사로잡았다. 루이비통은 예술성과 실용성을 함께 추구(르네상스)하고, 남다른 수준의 고고한 마케팅(바로크)에 장인들의 땀과 노력을 통한 품질 유지(고전주의)로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한정판 생산(낭만주의)에 최선을 다함과 동시에 로고와 화보를 활용한 각인 효과(인상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루에 수십 권씩 쏟아지는 비즈니스 관련 서적 중에서 평범한 디자인에 평범한 편집으로 그다지 시선을 사로잡지 못했던 책에서 기분 좋음을 발견했다. 음악을 전공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교육자가 경영학이 간과하고 있는 아쉬움을 유럽 유학시절의 성찰을 정리하고, 학생들에게 진리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리한 책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책으로 다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정성을 다한 집필이 느껴졌다. 세상에는 이렇게 숨은 고수와 숨은 명작들이 많다는 점에서 낯선 책을 찾아 나서는 즐거움 또한 크다. 업무와 경영전략에 적용하고 일상에 체화시킬 수 있기까지는 재독 삼독이 필요한 책이다. 많은 경영자들이 읽었으면 좋겠고, 경영자 아닌 평범한 독자로서의 독법은 일상의 아트코어 실현이 아닐까 고민해 본다. 목표가 올바르고 과정도 올바른 진선진미의 아트코어를 소문내고 싶다.

안중찬 ahn0312@gmail.com 장거리 출퇴근길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관련 11권의 전문 서적을 집필하고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이나 다양한 분야 여러 직업을 경험하면서 삶에 대한 애정과 추억이 많아 세상이 여전히 따뜻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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