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직장인들에게 안전지대는 없다. 탄탄한 대기업에 입사하여 정년 때까지 일하면 일생이 보장되는 시대는 끝났다. 한때 '신의 직장'으로 불렸던 중공업, 조선, 은행 등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타의에 의해
직장을 떠나는 사람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개인은 국가나 조직을 믿을 수 없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돈을 벌 수 있는 '부자발상법'이 필요하다. 과거 미국의 골드러시를 통해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금 발견과 같은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 채굴을 통해 돈을 버는 것에만 집중할 뿐, 물가가 어떻게 변하는지는 잊어버린다. 많은 사람이 몰려들면 생활필수품의 수요는 증대하고 물가는 오를 것이다. 따라서 명목임금이 상승해도 실질적인 수익은 줄어든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어떤 경우라도 존재한다.

중국의 예를 보자. 중국의 임금이 낮기 때문에 많은 제조업체들이 중국에 공장을 건설하고 현지에서 생산한 물건을 일본으로 가져와 팔면 막대한 이익을 올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 기업이 늘어나면 일본 내에서의 판매 가격은 낮아지고 중국에서의 생산원가는 올라가게 마련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공장을 중국으로 옮겨도 수익은 보장할 수 없게 된다.

온라인 주식거래도 마찬가지다. 주식의 주문을 인터넷으로 하면 비용은 절약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증권회사들이 온라인 증권업으로 진출했다. 그러나 이를 통해 거액의 이익을 올리고 있는 회사는 거의 없다. 경쟁기업이 많아 수수료가 내려갔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골드러시 때 돈을 벌었을까. 부자 발상법은 바로 그들의 성공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다. 골드러시 때 최초로 성공한 인물은 샘 브라틴이란 인물이다. 샌프란시스코 상인이었던 그는 금이 발견됐다는 뉴스를 듣자 금을 캐는 데 필요한 각종 도구와 생필품 등을 매점하기 시작했다. 매점이 끝나자 샌프란시스코 곳곳을 돌아다니며 금이 발견됐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 정보를 듣고 몰려든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아 순식간에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다. 그의 행위는 현대적 의미로 보면 치밀한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한 셈이다.

브라틴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는 그것을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과 비교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제공이 일반화됐을 때 미국의 많은 신문사나 잡지사들이 회원제 유료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시도는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아무리 유익한 정보라도 인터넷 상의 정보에 대해 사람들이 대가를 잘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야후 등 검색엔진은 이들 정보를 무료로 공개했다. 대신 광고수입으로 비용을 회수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선택하여 큰 돈을 벌었다.

그 다음 브라틴에게서 주목해야 할 점은 ‘독점’이다. IT시대에 브라틴과 비슷한 원리로 부를 축적한 사람이 바로 빌 게이츠다. 그는 PC에 필요불가결한 도구인 OS(기본 소프트)를 독점적으로 공급했다. 순전히 기술적인 측면만 따지면 IBM의 OS2가 낫다고 평가하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마이크로 소프트의 발전은 기술적 요인보다는 비즈니스 모델에 의한 것이다.

골드러시의 두 번째 성공자는 리바이 스트라우스란 인물이다. 독일 상인 힐슈 슈트라우스의 아들인 그는 1847년에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에서 의류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 역시 다른 포티나이너스와 마찬가지로 험난한 과정을 거쳐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지만 금을 캐러 가지는 않았다. 즉 ‘남이 하는 일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동부에서 조달한 의류와 잡화 판매를 시작했다. 장사는 날로 번성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금을 캐던 한 사람이 “힘든 일을 하다 보니 바지가 금방 헤져버린다. 텐트용 천으로 옷을 만들면 튼튼해서 좋겠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텐트용 천은 튼튼하긴 해도 피부에 닿으면 마찰이 심했다. 그래서 스트라우스는 프랑스 님 지방에서 생산되는 서지(serge de Nimes)를 사용해 청바지를 만들어 대박을 터뜨렸다. 이렇게 탄생된 회사가 그 유명한 ‘리바이스’다. 스트라우스는 기존의 물건을 전매하여 부를 축적한 브라틴과 달리 새로운 물건을 창조하여 돈을 벌었다. 그것이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마지막으로 헨리 웰즈와 윌리험 파고라는 인물을 소개하겠다. 1852년 두 사람은 우편이나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웰즈파고’사를 샌프란시스코에 설립했다. 웰즈파고사는 6마리의 말이 끄는 대륙횡단마차(overland stage)로 큰 돈을 번 회사다. 한때 유명했던 서부극에 반드시 등장하는 역마차를 자세히 보면 ‘Wells Fargo’라는 문자가 보일 것이다. 센트루이스에서 출발해 산 넘고 물 건너 장장 4437Km를 시속 8~19Km로 달리는 이 역마차에는 금화, 지폐, 수표 등 각종 귀중품과 실려있어 언제나 강도들의 약탈 대상이 될 정도였다.

웰즈와 파고 역시 앞서 소개한 브라틴이나 스트라우스처럼 ‘남과 다른 발상’으로 돈을 벌었다. 돈을 번 수단이 ‘물건’이 아니라 물류나 통신과 같은 ‘서비스’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금을 채굴한 사람은 고향으로 돈을 송금하길 원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신뢰할 만한 송금수단이 없어 웰즈파고사의 역마차에 의존했던 것이다. 1869년 대륙횡단철도가 완성된 후 동서부 물류를 독점했던 웰즈파고사의 역할은 끝이 났지만 그 이름은 은행부분에서 여전히 남아있다. 웰즈파고 은행은 전미 은행 가운데 시가총액 3위, 자산규모 5위다. 철도의 등장이라는 대변화에도 불구하고 웰즈파고사는 역마차 운송에서 금융비즈니스로 갈아타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부자들은 경제조건이 변화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적하게 대응하여 돈을 번다. 그들의 공통점은 남들과 함께 금을 캐러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금을 캐는 사람을 캔 것(Mining the gold miners)’이다. 19세기 후반 캘리포니아에서 부자들이 배출된 것은 그 곳이 자유의 천지였기 때문이다. 의욕을 가진 유능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자극하면서 새로운 것을 창출했다. 개인은 조직에 의존하지 않고, 조직은 정부에 의존하지 않았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자력과 창의성으로 성공을 거머쥔 것이다.
김국진 기자 (bitnara@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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