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미래를 책임질 확실한 산업 아이템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선, 중화학, 건설 등 과거의 영광을 만들어냈던 산업은 구조조정 1순위에 올라있다. 새로운 삼성 신화를 만든 휴대폰 사업도 중국의 추격으로 언제까지 지속될 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든 국가든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일본의 유명한 경제학자인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 와세다대 대학원 교수를 만나 ‘부자 발상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그는 현재 도쿄 니혼바시(日本橋) 코레도 빌딩 안에 있는 와세다대 대학원 파이넌스연구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10여 년 전 그는 공부 잘하는 비법을 담은 ‘초학습법(超勉强法)’이란 책을 써 15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냈다. 이 책은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돼 30만부 이상 팔렸다. 당시 나는 도쿄대학 교수로 있던 그를 인터뷰한 인연이 있다.

일본 최고의 인재들만 모인다는 대장성 관료였다가 1972년 미국 예일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히토츠바시, 도쿄대학 등에서 교수생활을 한 노구치 교수는 미국 경제와 일본 경제를 냉철하게 비교 분석할 수있는 국제파 학자다. 요즘 일본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서도 그는 ‘미국에 비해 일본 경제의 미래가 훨씬 암울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이유는 명쾌하다. ‘중국의 공업화’와 ‘IT혁명’이라는 세계경제의 구조적인 변화 속에서도 일본은 여전히 과거의 시스템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노구치 교수는 말한다.

"제조업에 대한 달콤한 기억을 버리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지 않으면 일본의 미래는 없다"
노구치 교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IT혁명을 19세기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일어난 ‘골드러시(gold rush)’에비유했다. 그는 "국가든 개인이든 부(富)를 축적하려면 보통 사람들과 발상을 달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음은 노구치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노구치 교수를 화자(話者)로 하여 정리한 글이다. 일본에 대한 그의 걱정을
그대로 지금의 한국에 대입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든 개인 자산을 운용하는 사람이든 돈을 벌려면 ‘부자발상법’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돈이 되는 발상법은 따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부자발상법’을 이해하려면 먼저 19세기 미국 서해안 캘리포니아주에서 일어난 ‘골드러시’의 스토리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캘리포니아주에는 ‘골든 스테이트(golden state)’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황금의 주(州)’란 뜻이다. 미국에서 변방 중의 변방으로 낙후돼있던 이 곳이 발전한 것은 골드러시 때문이었다. 그리고 21세기가 된 지금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또다시 새로운 골드러시가 일어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 하면 맨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존 셔터란 인물이다. 셔터는 독인 바덴 지방 출신으로, 1834년 31세의 나이에 부인과 세 자녀를 데리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넘어왔다. 사업 실패로 인한 막대한 빚을 감당하지 못해 도망을 친 것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거대한 농장주로 변신했다. 만일 그의 땅에서 금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아마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돈을 번 이민자로 기록될 뻔했다. 그러나 1848년1월24일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셔터의 농장에서 일하는 한인부가 수로를 청소하던 중 물 밑에서 반짝거리는 물질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금이었다. 셔터는 인부에게 그 사실을 절대 외부로 발설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으나 비밀은 물 새듯 흘러나갔다. 셔터의 땅에서 금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1년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각지에서 몰려왔다. 이른바 ‘포티나이너스(forty-niners)’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 금을 찾아 모였다. 당시 미국 동해안에서 캘리포니아주 까지는 철도도 없었고, 배가 운항할 수 있는 강도 없었다. 가능했던 것은 2가지 루트 뿐이었다. 하나는 육로로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것인데, 그 길이가 3200 Km 이상이었다. 철도가 없었기 때문에 걷거나 말을 타고 가야 했다. 두 번째 루트는 해로였다. 당시 파나마 운하가 없었기 때문에 남미 최남단을 회항할 필요가 있었는데, 동해안에서 6개월 이상 걸렸다. 금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난 사람들은 배 안에서 극심한 뱃멀미에 시달렸고, 음식과 물은 부패되어 먹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금을 찾아 떠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1848년초까지만 해도 캘리포니아의 비(非)인디언 인구가 1만4000명 밖에 없었으나 49년 말에는 10만명이 되었고, 52년에는 25만명까지 늘어났다.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는 많은 부자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2가지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나는 자연조건 이다. 통상 금맥은 지하 깊숙한 곳의 딱딱한 암석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채굴하는 데많은 장비와 대규모의 투자가 필요했다. 그런 조건 하에서는 대기업이나 정부 만이 금을 캘 수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금맥은 지표 가까이 노출되어 있었다. 금을 캐는 데필요한 것은 거대한 자본이 아니라 힘든 여정과 노동을 견딜 수 있는 인내력 뿐이었다.

두 번째는 정치적 조건이다. 셔터가 이민올 당시 캘리포니아는 멕시코령이었다. 즉 정부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자유의 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폭력이 지배하는 무법천지이기도 했다. 셔터는 사실 이 때문에 수난을 당했다. 이땅에 토지소유권이 확립돼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군대가 금광지대를 봉쇄하여 지켜주는 것도 아니었으며 금 채굴을 위해 막대한 허가료를 지불할 필요도 없었다. 금을 채굴하여 이익을 챙겨도 세금 한푼 낼 필요도 없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있고, 규제가 없다’는점에서 골드러시는 지금의 IT혁명과 비슷하다. 인터넷은 아무런 규제도 존재하지 않는 자유의 천지다. 독점회사에 의해 운영되는 전화나 허가 받은 몇몇 방송사만이 운영할 수 있는 라디오,TV와도 다르다. IT혁명을 ‘21세기의 골드러시’에비유하는 것은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이 금처럼 가치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규제가 없는 새 기술은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와 비슷한 성질이 있다’는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IT의 본질이다. 캘리포니아에서 금을 캐는 데 필요한 것은 삽과 채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으로 일하는 데 필요한 것은 PC 뿐이다.

금이 발견된 농장의 주인 셔터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각고의 노력으로 만든 농장은 침입해온 금 채굴자들에 의해 엉망이 되었다. 그의 전재산은 폭도에 의해 약탈당했고, 농장은 파괴되었다. 셔터는 어쩔 도리 없이 식구들과 함께 멀리 떨어진 곳으로 몸을 피해야 했다. 그 후1850년 캘리포니아주는 미합중국에 편입되어 마침내 그 지역이 법과 질서를 되찾았다. 이후 셔터는 대규모 소송을 벌였다. 샌프란시스코의 토지는 대부분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파괴된 재산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채굴된 모든 금에 대한 응분의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그는 재산 대부분을 쏟아부었다. 마침내 재판부가 셔터의 손을 들어줬다. 당연히 셔터가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어야 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판결 내용을 알게된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켜 그의 자식 3명이 살해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셔터는 그 충격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정신병에 걸려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셔터의 불행을 슬픈 눈으로 바라만 봐선 안 된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농장에서 금이 발견되었을 때 셔터는 농장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정보가 밖으로 새 나가면 많은 사람이 몰려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정보를 차단하는 데 급급했다. 하지만 정보가 새나갔을 때를 대비한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게 패착이었다. 걱정은 걱정대로 두고 일상적인 일에 몰두한 셔터의 모습은 엄청난 변화 속에서도 묵묵히 하던 일만 계속하고 있는 우리 보통 사람들과 비슷하다. 너무나 큰 문제에 직면했을 때 사고가 정지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이것을 ‘일상성에 대한 집착’이라고 말할 수있다. 지금의 일본도 그렇다. 금융기관이나 기업이 속속 파산하던 90년대 후반 ‘이대로 가면 일본은 큰일난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그 일이 지나가고 경기가 조금 좋아지자 일본경제의 장기적인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적어졌다. 이는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너무도 크기 때문일 것이다."
김국진 기자 (bitnara@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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