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적인 적자로 인해 해운·조선 업계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이 눈앞에 다가왔다. 정부는 물론 여야까지 구조조정에 동감을 표시하고 있어 위기의 한국경제를 살리는 처방전이 구조조정이라는 논리에 반기를 들기는 어려울 것 같다. 구조조정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언론에서도 이를 뒷받침할만한 보도거리를 찾기 위해 혈안이다.

최근 구조조정이 언론의 최대 관심사가 되면서 2년 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보고서가 하나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KDI가 2014년 11월에 발표한 이 보고서에는 자산규모 기준으로 15.6%에 달하는 좀비기업의 비중을 10%포인트 떨어뜨리면 정상기업의 고용을 11만 명 내외로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 나와 있다. 구조조정을 하게 되면 해당 기업에선 실직이 생기지만 좀비기업에 들어갈 노동·자본 등이 정상 기업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논리다. KDI는 한 산업의 좀비기업 자산 비중이 10.0%포인트 높아지면 해당 산업에 속한 정상기업의 고용 증가율이 0.53%포인트, 투자율이 0.18%포인트 각각 하락한다는 분석을 바탕으로 이 같은 결과를 추산했다.

보고서 작성에 참가한 한 KDI 연구위원은 “정부는 구조조정 시 나타날 수 있는 대량 실업에 대비할 예산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며 “더 중요한 것은 실업한 사람들이 생산성이 높은 신산업으로 이동해 경제 전반에 활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책상머리에서 통계를 만지작거리며 전망한다면 이런 분석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과연 그럴까?

해운·조선은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이끌어왔던 원동력이었다. 구조조정 등 여러 방편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구조조정과 함께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회사에서 밀려난 수많은 인력이 절망의 나락에 빠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한 일이다.

좀비기업을 구조조정하면 정상기업으로 노동과 자본이 흘러들어간다는 것은 과연 믿을만한 논리인가? 경제가 위축되면 정상기업이 좀비기업으로 전락하는 것도 순식간에 일어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실업한 사람들을 신성장 산업으로 대거 이동시켜야 한다는 KDI연구위원의 말도 책상머리에서 나온 발상이다. 예컨대 조선업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 구조조정 당해 요즘 신산업으로 떠오르는 드론이나 자율운행차 분야로 이직이 과연 가능할까?

국가 경제의 존망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 개개인의 존망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숫자놀음보다는 구체적인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

김국진 기자 (bitnara@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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