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4일동안 남인도여행을 마무리하며 힐링하고 에너지를 재충전했다. 마지막 여행지로 쿠살나가르에서 마무리하기로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티벳마을을 돌며 영혼을 정화하고 숙소에서 새소리와 물소리에 마음을 청소했다.

우리가 머문 리조트에는 군데군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불쑥불쑥 나타난다. 토끼도 보이고 호텔구석구석에서 재미있는 동화의 구절들을 읽는다. 호텔주인이 앨리스를 좋아하냐고 매니저에게 물어봤다. 매니저설명이 재미있다. 호텔컨셉이 이상한 나라란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해보이는 리조트지만 구석구석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있단다. 사실이 그랬다. 강변을 걷다보면 절벽이 나타나고 절벽을 타고 내려가면 강물이 흐르고 강을 건너면 섬이 있다. 섬에서 길을 헤매다보면 왁자지껄 소란하게 파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들과 헤어져 올라가보면 사슴들하고 코끼리를 만난다. 구석구석 토끼구멍이 있는 셈이다.

7시에 요가클래스로 갔다. 한명뿐인 학생을 위해 요가선생님이 일찍 오셔서 기다리신다. 먼저 어제 했던 내용을 복습하신다. 이펙트 굿이라고 칭찬하신다. 우리나라 맨손체조하고 비슷하다고 말씀드리려다 그냥 우아하게 웃어드렸다. 잘 가르친 보람을 선물하고 싶었다.

오늘은 새로운 동작을 더 가르쳐주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코로만 호흡하는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인도에서는 입으로 호흡하면 안될듯 싶다. 먼지가 심한 곳에선 코로 숨쉬며 필터링이 필요하다. 선생님콧바람이 엄청 세시다. 난 앞으로도 오랫동안 훈련해야 선생님의 콧바람경지에 도달할듯 싶다.

몸으로 하는 요가가 끝나고 명상의 시간이다. 양손바닥을 문지르고 눈에 가져다대는데 요가동영상에서 보던 아우라가 보인다. 두번 보이더니 세번째부터는 안보인다. 참 신기한 체험이다.

선생님께서 요상꾸리한 명상음악을 틀고 옴 무시기저시기뜨라꾸라...샨티샨티로 마무리축원을 해주신다. 좋은 학생이라 칭찬해주신다. 다른 때라면 감사의 답레로 돈을 드렸을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외국인 관광객은 보지를 못했다. 이런 곳에서 돈으로 감사를 표시하는것은 물을 흐리는 일이다. 진심을 담아서 큰절을 드렸다. 한국에서 높은 분에게 드리는 인사라고 말씀드리니 무지 좋아하신다.

로비로 오니 영어제대로 하는 매니저가 있다. 어제부터 와이파이 커넥션이 이상하다 말했더니 자기 모바일폰 커넥션으로 접속을 허락해준다. 덕분에 밴드에 글을 올리고 댓글들도 확인했다.

친구가 왜 티벳캠프가 남인도에 있는지 궁금해하길래 물어봤다.

40년전에 정부에서 티벳난민을 위해 땅을 제공한건데 무시기수상이 결정한 일이라 한다. 뭐라뭐라 설명하는데 정치적인 말을 알아들을수가 없다. 한국정치이야기도 못알아들어서 시사나 정치이야기만 나오면 난 일자무식이 되는데 중국 티벳 인도가 엮인 일이라 더 못알아듣겠다. 더구나 매니저도 자세히는 모른다 한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나중에 인터넷 잘되는 곳에서 복습해야겠다.

티벳스님들과 티벳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고급리조트에서 식사하고 수영하는 모습이 낯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되는 모습이다. 성직자가 고행해야 한다는 우리의 관념이 이기적이고 가식적인 것이다.

진정한 성직자는 금방석에 앉아있던 짚풀더미에 앉아서 먼길을 가던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라를 잃고 망명한 사람들의 표정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평화롭고 변함없는 모습이 감동이다.

티벳캠프는 내가 티벳에 갔을때 봤던 모습하고 다를것이 없다. 그 흔들리지 않는 중심에 라마불교가 있다. 무심한듯 보이는 티벳인들 표정이 말해준다. 티벳은 마음속에 변함없이 존재한다고...유대인들처럼 강한 근성으로 나라를 찾지는 못할지라도 어느누구도 힘이나 재력으로 티벳의 정신을 훼손시키진 못할듯 싶다.

수많은 재력가들이 라마불교에 심취해서 어렵게 퍼밋을 얻어 캠프에서 묵으며 생활하고 교리를 배운다. 그들은 감사의 뜻으로 스님들을 모시고 좋은 식당에서 대접한다. 짧은 순간 호사하는 시간을 갖지만 그에 대한 동경이나 욕심은 절대 가지지 않는다. 변함없이 붉은 가사장삼을 걸치고 오토릭샤를 타거나 걸어다닌다. 호화로운 사치는 잠시 즐기면 그뿐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리라.

살아가는 모습자체에서 가식이나 꾸밈이 필요없는 이유를 알듯 싶다. 마음이 깨끗하고 순수하면 어떤 행동을 하던 숨김이 없고 떳떳한 법이다. 그러니 고급리조트에서 밥을 먹던 수영을 하던 길거리에 앉아서 멍때리고 있던 거리낌이 없다.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딸과 함께온 점잖은 부부와 아침인사를 나누며 아침요가교실 넘 좋더라고 추천했다. 총지배인이 식사를 하고 있어서 요가교실 유익하고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손님들에게 요가교실에 대해 홍보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총지배인입이 귀에 걸린다.

보는 사람들마다 투덜대는데 칭찬들으니 좋은가보다. 자꾸 내근처를 얼쩡거린다. 가장 좋은 감사의 표시는 뒤에서 하는 칭찬이다. 선생님귀에 들어갈지 모르겠지만 요가클래스가 없어지지 않으면 좋겠다. 보는 사람들마다 아침에 요가교실에 가라고 추천했다. 난 내자신을 위해서 서운한 일이나 원망은 빨리 잊어버리지만 감사한 일은 될수있으면 갚으려 노력한다. 그래야 마음의 빚이 없다.

아침을 먹고 남인도를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푹 잠겨서 목욕을 했다. 때는 벗기고 좋은 기억과 깨끗한 마음만 가져가고 싶다. 강변리조트라 아침이 눅눅하다. 해가 나와서 마당에 눅눅한 옷들을 널어서 보숭보숭하게 말렸다.

정원에 나와보니 점잖은 가족이 바로 우리 옆집이다. 우리는 3박4일 머물렀는데 그가족은 하루 더 머문단다. 아저씨가 미스터장을 찾는다. 섬건너기하면서 남편을 좋게 생각했나보다. 남편을 불러서 같이 토킹어바웃 이것저것 했다. 아저씨가 미쓰비시에서 일을 해서 일본출장을 자주 다녔단다. 그래서 서울에도 와봤단다. 딸은 미국 뉴저지에 산단다. 마치 옆집에 새로 이사온 사람들 통성명하는것 같다. 우리는 오늘 체크아웃한다고 하니 우리의 여행을 축원해준다.

잠시사이에 보숭해진 빨래들을 걷어서 짐싸고 떠날 준비를 마쳤다. 체크아웃하려고 리셉션에 갔더니 피드백을 작성하라고 한다. 호텔에서 체크아웃할때마다 하는 과정이다. 피드백 내용 중에 매니저가 식탁에 들렀냐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총지배인이 벌서듯이 식탁마다 방문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호텔에서 쓴 돈들을 정산하려는데 카드가 안된다. 어째 계속 와이파이 접속도 안되고 메일체크도 안되더니 낭패다. 호텔비 큰덩치는 미리 카드에서 나갔으니 별 문제 없는데 맛사지다 식사비다 이것저것 30만원 가까운 돈을 내야하는데 카드커넥팅이 안된단다. 할수없이 숨겨둔 새돈들을 꺼냈다. 아끼면 똥된다더니 옛말 틀린것이 없다. 그나마 새돈 꼬불쳐두기 잘했다.

체크아웃하고 나가려는데 옆집가족이 들어온다. 어제 내가 강추한 코끼리캠프 다녀오는 길이란다. 이래저래 우리 부부와 친해진 가족과 이별의 포토 세레모니를 남겼다. 다시 만나자는 인사가 상투적으로 들리지않는다. 남편과 비슷한 분야에서 일을 하는것 같으니 아마 언젠간 인연이 되면 만날 일이다.

버스터미널로 와서 마이소르가는 버스를 탔다. 벵갈루르로 가는 버스도 있긴한데 한참을 기다려야한다. 벵갈루르가는 버스는 모두 마이소르를 거치니 마이소르가서 갈아타면 된다.

버스에 올라서 앞자리로 가니 스님이 앉아계신다. 통로건너 앉으며 인사를 하니 코리아? 하신다. 필리핀이나 네팔로 안봐주시니 감사하다. 영어는 거의 못하는 모양이다.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영어가 안되니 그저 해맑게 웃으신다.

마이소르가는 중간에 들른 정류장에서 스님께서 생오이에 맛살라뿌린 것을 사서 먹으라고 주신다. 우리가 사드려도 모자란데 사주시니 감사하다. 처음으로 길거리음식에 입을 댔다. 배탈날때 나더라도 주신 성의를 무시하기 어렵다.

맛살라뿌린 오이가 생각보다 맛있다. 우리나라 오이무침맛이 난다. 버스는 마이소르에 도착하고 내리는데 스님이 어디로 가냐고 물으신다. 벵갈루르간다했더니 먼길 간다고 놀라신다. 그냥 웃었다. 더 먼길 돌아돌아 왔는데 말이지요.

인사를 드리고 벵갈루르버스 플랫폼으로 갔다. 벵갈루르버스라 해도 꼬지긴 마친가지라고 생각하고 자리에 앉는 순간 건너편에 논스탑 벵갈루르라는 표지가 보인다. 바로 내려서 갈아탔다. 대도시간에는 우리나라 고속버스수준인 버스들을 비롯해서 다양한 등급의 버스들이 있다. 촌에서 상경한 티를 팍팍 내면서 흐미 좋은거를 연발했다.

고속버스가 좋긴 좋다. 거의 논스탑으로 쉬지않고 달리다 중간에 한번 쉬어준다. 도로도 쫙쫙 거침이 없어 벵갈루르에 3시간만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공항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쿠살나가르에서 공항까지 오는 동안 버스가 바로 연결되는 것이 신기하다. 역시 인구많은 대도시구간이라 버스도 자주 있다.

공항버스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버스라 차장과 운전사복장이 다르다. 버스도 지난번 떼카티갈때 탄 버스와 똑같이 생겼다. 공항버스라 그런지 영어로 안내방송까지 한다.

넥스트 스탑까지는 알아듣겠는데 정류장이름이 도통 귀에 들리지 않는다. 종점이 공항일테니 그냥 앉아 있었다.

벵갈루르가 크긴 큰 도시인가보다. 버스터미널에서 공항까지 2시간이나 걸렸다. 거리는 30킬로정도인데 교통정체가 심하다. 시간을 여유있게 가져서 다행이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보는 벵갈루르시내에는 없는게 없다. 맥*** K** 등등 백화점의 60%세일광고등...오랫만에 낯익은 도시의 풍경들을 만나니 차도녀의 본능이 확 살아난다.

공항에 도착하니 깜짝 놀랍다. 예전에 델리공항에 내렸을때나 첸나이공항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버스는 공항입구에서 멀찍이 세워준다. 공항입구까지 가는데 여기가 인도인지 혼란스럽다. 희한하게도 식당들이 공항밖에 있다. 아까 벵갈루르시내를 지나면서 본 섭웨이를 보자마자 들어갔다. 샌드위치하나씩 흡입하고 돌아보니 다른 메뉴들도 보인다. 후회스럽다. 하나씩 골고루 먹을걸 싶다.

남편이 담배를 피려고 흡연장소를 찾다 못찾아서 번잡한 곳을 피해 멀찍이서 피는데 공항직원이 달려오더니 못피게한다. 원래 공공장소에서 못피는건 알지만 흡연실찾다 사람없는 후미진데서 피는데도 뭐라한다.

공항에 넘 일찍 왔더니 들어가지를 못하게 한다. 추워죽겠는데 실내공간이라고는 없다. 데이케어호텔에 들어가려고 물어보니 빈방이 없단다. 라운지도 뱅기시간보다 일러서 이용이 안된다한다. 편하게 방잡고 쉬기를 포기하고 카페노아 노천카페에 자리잡았다. 목도리 두르니 그나마 살만하다.

마침 흡연실이 카페노아옆에 있어서 남편이 좋아한다. 커피와 차를 시켰다. 카모마일티를 시켰는데 티백이 엉켜서 풀어지지 않는다. 가격은 글로벌 수준으로 받으면서 품질은 프랑스 시골에서 줏어온 차를 사용하는듯 하다. 그래도 겉으로는 프랑스분위기 풀풀난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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