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체크인하는데 직원아가씨가 친절하게도 이것저것 묻는다. 여행은 어땠냐? 어디어디 여행했냐? 정말로 궁금해하는줄 알고 사실대로 이야기해줬다. 근데 눈은 딴데를 쳐다보며 계속 이야기를 진행한다. 기분 묘하다. 대화하면서 눈알을 여기저기 굴리는 신공은 새로운 기술이다. 방을 체크하고 수속하는 시간동안 고객이 지루하지않게 영혼없는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방이 준비되고 벨맨이 짐을 들고 완료되자 모든 대화는 끝나고 편히 쉬라고 인사를 한다.

버스타고 졸다가 목을 삐었는지 목에서 어깨까지 뻐근하다. 리셉션에 맛사지룸이 있냐고 물으니 호텔에는 없고 시내 올림픽스파로 가면 된단다. 케랄라에서는 거리에서 쉽게 만날수 있었는데 카르나타카주는 아유르베다를 쉽게 할수 있는 곳은 아닌듯 하다.

맛사지도 하고 옷이라도 하나 살겸 호텔을 나갔다. 옷가게들이 즐비한 거리로 갔는데 내가 원하는 심플스타일이 없다. 죄다 칭칭 두르는 스타일이거나 잠옷으로나 입을 정도의 옷들이다. 큰 도시인지 나이키와 리바이스도 있다. 맛사지할 의욕도 상실해서 그냥 ATM에서 돈찾고 들어왔다. 새돈을 쓰지 않으려고 찾는데 또 새돈이 나왔다. 인도정부가 돈을 자꾸 찍어내는 모양이다.

아침은 어제 묵은 호스펫체인호텔보다 많이 부실하다. 호스펫에는 유럽 일본등 외국관광객이 많다보니 빵도 종류가 많고 심지어 파스타도 즉석에서 해줬는데 시모가호텔은 같은 체인호텔인데도 거의 인도식이다.

마음먹고 제일 하기싫은 일을 했다. 어제 로칼버스를 6시간타는동안 먹는것땜에 고생해서 오늘은 간단히 빵조각이라도 챙기려는데 쌀것이 많지않다. 어제 호텔은 빵도 유럽식으로 다양했었는데...시계를 어제 아침으로 돌리고싶다. 그래도 로칼에서 굶지않으려고 몇개 챙겼다. 음식챙겨다니는거 제일 싫은데 먹고살려니 할수없다.

8시30분차를 타려니 바쁘다. 아웃하면서 시간없으니 빨리 해달라하는데도 직원이 또 영혼없는 인사말을 건넨다. 스테이 콤포터블? ’o미싶은데 예에에에수라고 웃으며 답해줬다. 기다리는동안 다른 직원이 오더니 또 스테이 콤포터블? 묻는다. 또 예에에에에수 답해줬다. 미니바 등 방체크하는 동안 시간 떼울라고 이것저것 묻는데 내맘은 바쁘다.

아웃하고 버스터미널로 와서 8시30분차를 탔다. 항상 시간여유를 두고 준비하는 우리는 15분전에 타면서도 맘이 바쁘다. 버스에 자리잡고 화장실 다녀와서 자리밑을 보니 신문지가 깔려있다. 생각없이 앉았는데 비위가 확 상한다. 누군가의 멀미흔적이다.

도저히 앉을수가 없어 앞자리로 옮겼다. 그러고보니 창밖에도 누군가의 멀미흔적이 얼룩져있다. 앞자리에서 누군가 수상한 기미가 보이면 바로 창을 닫아야 폭탄세례를 피할수 있을것이다.

쿠살나가르가 오늘 우리의 종착지이다. 로칼버스요금이 합쳐서 5백루피에 달하는걸 보니 오늘 우리의 길이 얼마나 먼지 알겠다. 어제 380루피에 6시간가까이 달렸는데 오늘 각오가 새롭다. 그래도 오늘은 비상식량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시모가를 출발한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자 엄청난 인파에 밀려 꼼짝을 못하고 있다. 아마 종교행사가 있는 모양이다. 모두가 빨간 사리를 단체로 입고 떼로 몰려 도로까지 가득 채워 버스는 거북이걸음으로 겨우 빠져 나온다. 어제 호스펫에서 시모가로 오는 길에는 동네가 많지않아서 중간에 여러번 서지 않았는데 시모가에서 하산가는 길에는 동네가 많아서 자주 선다.

카르나타카주 버스상태가 다른 주에 비해 좋다. 장거리구간인데 버스상태라도 좋아서 다행이다. 버스는 열심히 달려서 하산에 도착한다. 하산터미널은 시모가터미널못지않게 크고 좋다. 그러고보니 카르나타카주의 터미널은 비슷한 모양들이다. 주정부에서 터미널과 버스들을 다 운영하는 모양이다. 차장하고 기사명찰에 주정부마크가 딱 붙어있다.

영어가 이동네에서 완전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는 대표적 예가 호텔이다. 처음에 길거리에 왜 이렇게 호텔이 많은지 의아했다. 시모가터미널에도 호텔이 있기에 들어가서 방있냐고 물어볼뻔 했다. 이곳에서 호텔은 식당이란 의미로 쓰인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호텔은 여기선 Lodge로 불리고 있다.

인도에서 좋은 호텔에 묵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어김없이 20퍼센트이상의 세금이 더 붙는다. 부자들이 내는 세금이 카르나타카에서는 터미널하고 공공시설 짓는데 쓰였다고 생각하니 내가 낸 세금들이 덜 억울했다. 사실 다른 주에선 그 세금으로 뭐하나 욕이 나올 정도였다.

하산터미널을 떠나 쿠살나가르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은 또다른 풍경이다. 이동네 집들은 특이하게 이층집들이다. 집들은 황토로 지어져서 환경친화적으로 보인다.

좋은 집들이 많이 보이는 반면에 천막생활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천막이 알록달록하니 다양하다.

1박2일의 긴 여정끝에 마침내 쿠살나가르에 도착했다. 터미널에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한적하고 깨끗한 동네다. 내가 도착했는지 어떻게 알고 카르나타카주의 전통공연을 터미널앞 광장에서 벌여준다. 전통의상이 멋져보인다.

숙소에 도착하니 힘들게 도착한 보람이 있다. 리조트는 각자가 독립된 빌라형이다.

모든 집이 같은 구조라 한다. 침실과 거실이 분리되어있고 무엇보다 목욕탕이 환상이다. 욕조에 들어앉아 있으면 나무와 하늘이 보인다. 저녁먹는 식당은 수영장옆 분위기도 좋다. 함피에서부터 관광객들과 삐끼들에 치이고 로칼로 장거리이동에 지친 심신이 바로 힐링되는 기분이다. 3박4일동안 새로운 집이 생겼다.

저녁먹으려고 수영장옆 식당에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녁은 부페식이라 한다. 자리잡고 앉아서 부페가 다 차려지길 기다리는데 라마스님이 몇분 들어오시면서 자리를 잡으신다. 좀 있으니 라마스님들이 떼지어 들어오신다. 티벳불교캠프가 있다해서 찾아온 곳인데 스님들이 단체로 이 리조트에 식사하러 오셨는지...숙박하고 계신지 아리송하다. 스님들이 숙박하고 계시기엔 넘 현대적이고 세속적인 곳인데 말이다.

궁금해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숙박은 안하시고 30명이 예약해서 저녁드시러 왔다한다. 백인들도 몇명 섞여있다. 티벳스님들은 무지 시끄러우시다. 우리나라 산사에 오셔서 며칠 템플스테이하셔서 묵언수행을 하셔야 할듯 싶다.

이틀동안 열심히 버스갈아타고 온 보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남인도여행의 마무리를 기분좋게 마무리하고 싶어서 좋은 숙소를 잡았다. 내일하고 모레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진다. 전자상가 총각이 추천해서 온 곳이라 큰 기대는 하지않는다.

일단은 푹 쉬고싶다. 어제 삐끗한 목과 어깨가 아파서 맛사지 받으려는데 오늘은 예약이 차있어서 내일로 예약했다.

티벳스님 30분과 콘티넨탈식 부페 레스토랑에서 함께 저녁을 먹는 것은 색다른 체험이다. 스님들 말씀이 시끄럽게 들린 이유를 알겠다. 티벳말 자체가 몽골말처럼 투그럭투그럭 거리는 말투여서 퉁명하고 큰소리로 들린다. 엄마가 만약 이렇게 많은 스님들과 같은 레스토랑에서 동등한 자격으로 밥을 먹는다면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셨을거다. 엄마 생각하니 갑자기 울컥한다.

천미터고지의 동네라 해만 지면 쌀쌀해진다. 레스토랑 가든 한편에 모닥불을 피워준다. 불옆에서 스님들 대화를 열심히 듣는데 알아들을 말이 하나도 없다. 처음엔 퉁명하고 시끄럽게 들리던 말들이 점점 친근하게 들린다. 스님들중에 젊은 스님들은 사진찍느라 바쁘시다. 부페메뉴중에 고기메뉴도 드신다.

서양인 신자들하고 앉아서 대화도 나누고 행동들에 가식이 없고 거침이 없다. 처음에 느끼던 거리감이 점점 없어지고 그냥 같은 식당에서 밥먹는 옆테이블 손님으로 느껴진다. 성직자도 밥먹고 자고 배설하는 똑같은 사람인 것이다.

남편은 쉬겠다고 먼저 들어가고 나는 모닥불이 좋아서 계속 있었다. 간디처럼 생긴 키작은 양복입은 신사가 오더니 말을 건다. 저녁 잘 먹었냐고? 부페로 먹으니 배가 불러죽겠다고 투덜댔다. 알라카르테도 있는데 왜 안시켰냐고 한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메뉴달라고 하니 오늘저녁은 무조건 부페먹어야 한다 했다. 본인이 총지배인인데 체크하겠다고 한다. 체크한들 이미 부를대로 부른 배를 어찌 꺼지게 할수 있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도 방으로 돌아왔다.

배는 불러터져서 그냥 자려니 괴롭고 강변산책이라도 하자고 나가자 했다. 강변을 따라 걷는데 강가에서 한커플이 너무나 행복한 모습으로 저녁을 먹고있다. 로맨틱디너의 끝판이다.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오고 캠파이어를 즐기며 저녁을 먹는 모습은 허니문의 로망이다. 아니나다를까 허니문팩키지로 뭄바이에서 온 커플이다. 마구 부러워해주고 축복을 퍼부어주었다.

강변산책은 긴 코스는 아니다. 하지만 이 리조트를 선택한 이유중 가장 큰 이유는 강안에 있는 작은 섬들 때문이다. 지도에서 리조트위치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선택했다.

섬들만 제대로 걸어다녀도 제대로 자연을 즐길수 있을것 같아서다.

그 강변의 허니문리조트에서 우리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져 잤다. 꿈에 엄마가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얼마나 좋은지 엄마를 끌어안고 마구 만졌다. 아직도 엄마의 느낌이 내손에 남아있는듯 생생하다. 티벳스님들하고 저녁먹으면서 엄마를 생각해서 꿈에 나타난 모양이다. 그렇게 보고싶어해도 안나타나더니...꿈이지만 너무너무 좋다. 꿈에라도 자주 나타나주면 얼마나 좋을까나.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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