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분류학자 유기억교수가 들려주는 야생화 이야기,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그림=홍정윤, 뚱딴지
그림=홍정윤, 뚱딴지

우리말에 ‘뚱딴지같은 소리 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이나 엉뚱한 소리를 할 때에 쓰는 말이다. 도대체 뚱딴지는 어떤 물건이기에 이런 표현의 주인공이 된 것일까? 많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단어이지만 정작 뚱딴지(Helianthus tuberosus)가 식물의 이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뚱딴지의 겉모양은 그저 평범한 식물로만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절로 나 자라는 식물이 아니라 작물로 재배하는 식물이라서 무심코 지나쳤던 비교적 흔하게 보아 왔던 종류다. 문제는 땅속의 기관인데, 흙을 들어내고 땅속을 살펴보면 땅속줄기(地下莖) 끝에 감자처럼 생긴 덩이줄기(塊莖)라고 부르는 저장 기관이 여러 개씩 달려 있어 매우 신기하게 보인다. 감자하면 의례히 땅속에 달려 있는 감자를 떠올리지만, 뚱딴지는 그런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 뚱딴지는 가축 사료로 들여와 재배했던 것인데 지금은 야생화되어 자연에도 분포하게 되었다. 한때는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생태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식물이었지만, 덩이줄기에 국화과 식물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저장 다당류의 하나인 이눌린(Inulin)이라는 물질이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 유용한 약용식물로 인정받고 있다.

시골에 농사를 짓지 않는 묵밭이나 밭 주변에 심어 놓은 뚱딴지 재배지를 가 보면 여지없이 멧돼지가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다. 땅속 덩이줄기를 먹기 위한 것인데, 마치 밭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움푹움푹 패여 있는 구덩이가 여러 개 생겨나 있고 가끔은 미처 먹지 못한 덩이줄기가 하나둘씩 흩어져 있다. 어릴 적엔 거저 얻은 기분으로 그것들을 주워 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얼마 전에 강원도 홍천의 어느 산으로 조사를 나갔었는데,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처럼 잘 정리된 길을 따라가며 조사를 한다면 전혀 무리될 것이 없겠지만 내가가는 대부분의 조사 지역은 길조차 명확하지 않은 곳이 많다. 산길을 찾기 위해 근처 마을을 찾아가 수소문하기도 하고, 지도에 나침판을 올려놓고 애써서 길을 찾기도 한다. 때로는 어렵게 동네 어르신들께 얻어 낸 길 정보가 너무 오래 전 기억이라 허탕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보면 하루 종일 길 입구 찾기만 반복하다가 정작 볼일을 보지 못하는 때도 있다.

그날도 대학원 학생이 알아 놓았다는 길을 따라 산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길다운 길은 나오질 않고 환삼덩굴, 박주가리 같은 덩굴성 식물들이 얽혀 있는 묵밭으로만 이어졌다. 이른 아침 무렵이라 전날 밤에 내린 안개 때문에 습하게 젖어 있는 덩굴을 헤치며 뚫고 가자니 이내 바지가 흠뻑 젖어 버렸다. 한참을 더 걸어갔지만 길은 나오질 않았고 어른 키만 하게 자란 돌피며 강아지풀 같은 잡초들만이 무성한 묵밭 한가운데 서 있게 되었다. 되돌아갈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지도에 나와 있는 길을 믿고 조금 더 위까지가 보기로 했다.

그때 저만치 앞쪽으로 바람에 흔들거리는 노란색 물체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이 산중에 저렇게 흐드러지게 필 노란색 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서둘러 그곳으로 가 보았더니 꽤 넓은 면적의 뚱딴지 밭이 조성되어 있었다. 해바라기만 한 높이까지 자란 노란색 꽃이 바람에 흔들려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그저 몇 개체씩 심어 놓은 것은 보았어도 그렇게 많이 심어져 있는 것은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길 찾던 것은 잠시 잊고 연실 사진기 셔터를 눌러 댔음은 물론이고, 그 앞에서 다함께 기념 촬영까지 했다. 결국 그날의 길 찾기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지금도 장관을 이루며 꽃이 피어 있던 뚱딴지 밭의 전경만은 머릿속에 생생하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뚱딴지는 어떻게 생겼을까? 뚱딴지란 말처럼 꼬이거나 갈라져 있을까, 아니면 어느 한 곳이 툭 튀어나와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을 학명에서 찾아보면, 뚱딴지의 속명 ‘Helianthus’는 그리스어로 태양을 뜻하는 ‘helios’와 꽃을 의미하는 ‘anthos’의 합성어이고, 종소명 ‘tuberosus’는 살이 많아 비대해진 땅속줄기를 갖는다는 뜻이다.

학명의 의미를 살펴보면 꽃은 해바라기처럼 생겼지만 땅속에는 튼실한 저장 기관을 감추고 있는 식물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뚱딴지라는 우리 이름은 땅 위와 땅속의 모습이 전혀 다른 의외의 식물이라는 뜻에서 갖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뚱딴지와 같은 속(屬)에 속하는 식물로는, 관상용으로 재배되고 있는 해바라기가 있다. 해바라기는 한해살이 식물이고 꽃은 지름이 8∼60센티미터로 크며 땅속줄기인 덩이줄기도 생기지 않아 뚱딴지와는 차이가 있다.

뚱딴지는 ‘뚝감자’, ‘돼지감자’라고도 부르며, 약용할 뿐만 아니라 차나 막걸리의 재료로 이용되기도 한다. 특이한 이름 덕분(?)인지 해장국집이나 선술집 상호로 가끔 도용되기도 있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국우(菊芋)라 하여 열을 내리거나 출혈을 멈추게 하는 데 쓴다. 잎과 줄기는 타박상과 골절상에 사용하기도 한다.

뚱딴지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유용한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의미 있는 식물이다. 이제부터는 엉뚱하다는 표현보다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쓰임새가 많은 친근한 식물이란 뜻으로 생각을 바꿔야겠다.

유기억 yooko@kangwon.ac.kr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이며, 식물분류학이 전공인 필자는 늘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하면서 숲 해설가, 사진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야생화를 주로 그리는 부인 홍정윤씨와 함께 책 집필 뿐 만 아니라 주기적인 전시회를 통해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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