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뉴스의 배경에는 트렌드가 있다.중요한뉴스에는 중요한 변화가 연결되어 있다.구글의 알파고(AlphaGo)가 연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BMW가인공지능 서비스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는가? 두 기업은 일본의 파나소닉까지 끌어들여 자동차에 인공지능비서를 구현하기 위한 공동개발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보다 스마트카 분야에서는 한발 앞서 있는 LG전자는 폭스바겐 그룹, 그리고 인텔과의 협력을 통해 인공지능기술이탑재된 미래 자동차 분야를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뉴스들이 인공지능 vs 천재 바둑기사 스토리에 순식간에 잡아먹혔다. 카플레이(Carplay)를 일찌감치자동차-스마트폰 연계 시스템으로 공략해온 애플도 구글의 안드로이드 오토에 인지도에서 밀릴 수 있다. 말하자면 구글의 강력한 ‘선빵’인 셈이다. 구글의시가총액이 애플을 제친 것도 이런 공격적 ‘선빵’에 힘입은것은 아닐까? 구글과 협력하기로 한 자동차 업체들(현대 기아자동차, 아우디, GM, 혼다 등)의개발 연합인 OAA(Open Automotive Alliance, 2014년 1월 출범)에게도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날짜나 이름을 정확히알지 못하지만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의 인공지능 딥블루가 체스 세계챔피언에게 도전해서 이겼다는 사실을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는 1996년 2월 10일의 대결에서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는 3승 2무 1패로 가까스로방어했고, 다음해 5월의 재대결에서는 디퍼 블루(딥블루의 다음 버전)가 3.5대 2.5로 이겼다. 이 이벤트 후IBM은 인간의 지적 능력에 도전할만한 능력을 보유한 IT 기업의 대명사로서 명성을 다져나갔다. 상징적인 도전이 새로운 상징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상징을 구글이 대체하려는 것이다.△ 인공지능 전쟁의 서막

바둑에서는 즐거운 상황을 묘사하는‘꽃놀이패(상대에겐 치명적이지만 자신에겐 별 손해가 없는패싸움)’라는 용어가 있다. 이번 대결에서 구글은 져도 고작(?) 1백만 달러, 이기면 착한 일(유니세프에기부)을 하는 기업이 되면서 인공지능 분야의 상징이 될 수 있는 꽃놀이패를 만들었다. 구글은 검색 엔진, 무인자동차, 스마트헬스케어, VR(가상현실) 등 인공지능이 접목될 모든 비즈니스에서선도적 지위를 점하려 할 것이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디지털화 메가트렌드의 성장에 한 획을 그으려는것이다. 따라서 지금 한국 언론에서 도배하고 있는 뉴스는 인간 대 인공지능의 대결이 아니라 구글의 선전포고를대신 전하고 있는 셈이다.

요점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벌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실제 내용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기업간의 경쟁이라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기업들인 포춘 500에 속하면서 인공지능 분야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기업은 거의 없다. 분야도 다양해서 유통, 자동차, 금융, 소비재 등 모든 영역의 기업을 아우르고 있다. 구글과 애플의 경쟁이전에 전세계 시가총액 1위를 했던 엑슨 모빌과 같은 대형 에너지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며 에너지 분야기업들이 앞다투어 인공지능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캐나다의 잡지 오일위크는 ‘스마트오일(Smart oil)’이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말한다.‘많은 에너지 기업들이 반복적이고 위험하며 시간이 많이 드는 유전 작업에서인간을 제외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와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의 한 회사(Robotic Drilling Systems)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협력해 자율형 드릴 고정장치를 개발한다. 이 회사의 제어시스템 관리자인 로알드 발렌은 비용이 많이 드는인간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 기계에 자율능력이 결합되는 것을 바라고 있다. 그는 “자율적 능력이 필요한 첫번째 이유는 빅 스탑(Big stop), 즉치명적인 작업 중단을 막기 위해서다”라고 말한다. 새로운기술은 극단적인 온도나 고압의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능적인 드릴을 목표로 한다’(Oilweek.com,2015년 9월 11일)인간 대 인공지능의 역사적 대결은 사실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비즈니스에 결합하여 미래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기업간경쟁의 결과물이다. 이것은 착한 기업이니 나쁜 기업이니 하는 문제를 넘어서서 기업 본래의 존재 증명에다름없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인간이 이기는가 인공지능이 이기는가가아니다. 초점을 잘못 맞추면 미래가 산으로 간다. 우리가봐야 하는 것은 인공지능 분야에서의 기업간 경쟁이라는 트렌드와 그 결과들이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시대를 이해하는 3가지 트렌드적 방향

이제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보는 미래 트렌드의 방향을 3가지 키워드로 살펴보자.

첫째로 `비약적인 생산력 향상`이라는 방향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기계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의양과 질을 비선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상상해보자. 알파고와 같은 지능의 프로그램이 굴착기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기업의 업무효율화를 위해 실수를 줄이는 데에 바둑 천재를 이기는 딥러닝 프로그램이 적용되면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인류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지난 몇 천 년간 생산력을 증가시킨 것보다 최근 몇 십 년간 더 높은 효과를 성취했는데 이제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무어의 법칙(1.5년마다 2배의 생산력 증가)이 적용된다고 할 때 20년 후는 어떨지 상상하기조차 버겁다. 풍요가 곧 행복의 증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하나의 변수일 뿐이다. 그러나 인류는 생산력 증가로 인해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풍요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두번째 방향은 `사회 전체가 디지털 알고리즘들의 경연장`이 되는 변화다.

딥러닝과 같은 인공지능도 결국 알고리즘(Algorithm, 컴퓨터공학에서 알고리즘은 문제를 풀기 위해 순서대로(STEP BY STEP) 배열한 지시사항의 모음을 의미한다)이다. 의사보다 수술을 잘 하는 로봇, 주식 매매에 특화된 투자 프로그램, 중매쟁이 1천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정보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짝을 찾아주는 온라인 데이팅 시스템들이 의미하는 것은 그들이 알고리즘의 변장이라는 것이다.

20년쯤 후에는 내가 대강의 영화 스토리를 짜면 지금보다 더 향상된 인공지능이 적용된 콘텐츠 알고리즘이 타겟 고객을 스스로 찾아내 분석하여 캐릭터나 사건에서 수정할 부분을 알려주고 내가 대사를 만들면 관객들의 예상 반응을 분석해 더 맛깔나는 대사를 제안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선택하면 주거 알고리즘이 색채, 조명, 온도, 습도, 소음, 가구, 소품 등을 최적화하여 집안 인테리어를 제안하거나 스스로 조정할 것이다. 앞으로의 사회에서 알고리즘은 거대한 국제적 위기의 조율에서부터 개인의 사소한 습관이나 취미에까지 적용될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이 알고리즘을 구입하거나 개인화시켜 활용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세번째 방향은 미래 사회가 `지능적 기계와의 협업 생태계`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는 사회에 대해 불안해하지만 미래는 그런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특정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긴다 한들 자율의지가 없는 한 똑똑한 프로그램에 불과하다(자율의지가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것은 미래의 윤리적 선택 문제가 될 것이다). 기계와의 대결 사회는 할리우드에서 외계인 소재에 식상한 이들이 좋아하는 시나리오다. 반면 디지털 비서를 가진 한국인 A와 미국인 B의 대결이 훨씬 그럴 듯한 미래다.

무엇보다 직업의 세계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직업을 대체하거나 혹은 기존 직업의 성격을 바꿀 것은 분명하다. 아무리 풍요 사회라도 직업이 없으면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면 마차를 몰던 마부가 아무런 준비 없이 자동차 운전수가 될 수 없듯이 새로운 직업들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무엇을 해야 할까? 코딩을 배우면 될까? 드론을 날릴 줄 알면, 3D 프린터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면 될까? 물론 이것들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미래의 직업에서의 진짜 문제는 기계와의 협업을 통해 새롭고 유용한 것들을 만들어낼 줄 아는 능력일 것이다. 대략 원리나 작동법을 한번 익혀보는 정도의 교육은 큰 의미가 없으며 직접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보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2005년 11월에 개최된 프리스타일(freestyle) 체스 게임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무도 예상치 않았던 우승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인간대 컴퓨터의 대결에서 계속해서 컴퓨터가 이기자 2005년의 이 대회는 인간과 컴퓨터가 팀을 이뤄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최되었다. 우승자에 대한 대략적인 예상은 체스 그랜드마스터(Grandmaster, 국제체스연맹이 수요한 최고등급의 고수)와 슈퍼컴퓨터의 조합이 우승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 진행에서도 대체적으로는 그랬다. 그런데 결승전에서 대반전이 일어났다. 영국의 젊은이 둘(Steven Cramton, Zackary Stephen)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양의 랩탑 컴퓨터 3대와 짝을 이룬 조합이 최종 우승을 해버린 것이다.

체스 최고수는 아니었지만 이 젊은이들은 컴퓨터와의 협업을 능숙하게 해냈다. 언제 인간의 영리함과 직감이 필요한지, 언제 컴퓨터의 조언을 받아야할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시간제한이 있는 이 시합에서 말의 움직임에 대해 빠르게 자신들의 의견을 교환하고 컴퓨터에게 의견을 묻고 동시에 그 전략이 과거 게임들에서는 어떤 결과를 냈는지를 분석했다. 그래서 3대의 컴퓨터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체스 최고수와 슈퍼컴퓨터의 조합을 이겼다.

물론 이제 딥 러닝은 이 당시 참가자들이 가질 수 있었던 컴퓨터들의 수천배, 수만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2명의 젊은이들과 3대의 랩탑 컴퓨터가 해냈던 일을 딥러닝 프로그램 혼자서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교훈은 달라지지 않는다. 미래의 직업 생태계는 점점 더 똑똑해지는 기계와의 협업을 잘 해내는 사람들의 세상이 될 것이고 그들이 새롭고 유용한 것들을 만들어내며 세상을 주도할 것이다. 슈퍼컴퓨터보다 똑똑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인간들 중에서 아주 똑똑할 필요도 없다.

좋은 질문이 미래를만든다

이 3가지 트렌드 키워드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구글의 선제적 마케팅에 찬탄을 보내지만 부러워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앞으로 예상되는 변화는 그보다 훨씬 더 크고 거대하며 지구적 규모의 변혁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미래를 위해 정부가 시행하는 인공지능 프로젝트 `엑소브레인(Exobrain)`(2013년 시작)은 고작(?) 1070억원 규모다. 현재 서울에 짓고있는 지하철 9호선의 8정거장을 건설하는 비용이 1조 3천억원 규모라는 것과 비교해보라. 국내 기업들도 걸음마 단계의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왜 그럴까? 우리는 그동안 눈앞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라는 질문에 적응해왔다. 그래서 어떻게의 그랜드마스터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큰 트렌드 변화 앞에서 ‘어떻게’는 나중에 해야할 질문이다. 왜냐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뜻 인공지능과 같은 중장기적 미래의 변화에 대해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5년, 10년 후에는 더 깊은 절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다 같이 고민해야 할 것은 우리가 직면해야 할 미래가 ‘무엇’인지 탐색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들과 살아야 할 미래의 구체적인 모습 말이다. 그래야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지, 현재의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성장이 무어의 법칙에 따라 진행된다면 10년 후 내가(혹은 우리가) 당면할 문제는 무엇인가? 세상은 어떻게 변해있을 것인가?’ 알파고의 도전은 이세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 문명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저자 : 김경훈

현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

1994년 <한국인 트렌드>를 집필하면서 트렌드 분야 연구를 시작했다. 20여년간 트렌드 읽기의 이론서인 <트렌드워칭>, 실전 예측서인 <핫트렌드> 시리즈를 비롯 20여권의 책을 냈다. 중장기적 글로벌 메가트렌드에 기반한 강연, 교육, 컨설팅을 하고 있으며 2010년부터 트렌드 전문가 과정을 열어 졸업생들과 함께 트렌드 분석 분야의 집단지성을 실험하고 있다.

김경훈 기자 (wowkim11@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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