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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드벤처 게임의 어제와 오늘

발행일시 : 2009-05-25 10:45

어드벤처 게임

다양한 소재의 수많은 게임 덕에 우리들은 더 이상 모험을 위해 짐을 싸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정작 게임에서 벌어지는 모험이 어디에서 왔는지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긴박감 넘치는 모험을 선물해 준 ‘어드벤처 게임’들은 과연 어디에서 왔고, 지금은 어떻게 남아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어드벤처 게임이란?

‘어드벤처 게임’(Adventure Game)이라는 장르와 그에 속하는 게임에 대해 설명하려면 어드벤처, 그리고 어드벤처 게임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어드벤처(Adventure)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Adventure(명사)

모험 / 모험심

(우연히 일어난) 희한한 사건, 뜻밖의 사건, 진기한 경험, 모험(담)

대담한 계획, 위험한(모험적인) 행동

어드벤처 게임 역시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 키보드와 마우스 등의 입력 장치를 써 등장인물과 대화를 하거나 암호 또는 퍼즐 등의 풀이, 탐험과 모험 등으로 시나리오를 진행시켜 나가는 게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이런 특성 때문에 어드벤처 게임은 슈팅, 액션, 전략 시뮬레이션 등의 장르에서 많이 요구되는 순발력, 반사 신경 등 운동 능력에 해당하는 동적 부분보다 판단력과 인내력, 통찰력 등 지적 사고와 관련된 정적 부분을 많이 요구한다.

또 게임을 진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부분의 인과관계와 짜임새가 어드벤처 게임의 흥미와 몰입도를 좌우하기 때문에 스토리는 물론 그래픽, 음악 등의 모든 게임 요소를 이용하여 게임의 인과 관계를 구성한다.

인과관계와 짜임새를 중시하는 대신 현실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어드벤처 게임은 매우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허구의 세계인 판타지부터 역사적 사실까지, 그리고 모두가 웃고 즐길 수 있는 코미디와 유머, 혼자 하면 왠지 겁에 질릴 것 같은 스릴러와 공포까지 어드벤처 게임이 포용할 수 있는 세계관은 무궁무진하다.

어드벤처에 대한 오해 : 어드벤처냐 롤플레잉이냐

앞서 설명한 어드벤처 게임의 특성 때문에 어드벤처 게임은 특히 우리나라 게이머들에게 많은 오해를 받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오해가 어드벤처 게임(Adventure Game)과 롤플레잉 게임(Role Playing Game)을 같거나 비슷한 장르의 게임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게임을 만들 때 단일 장르에 충실하기보다 여러 장르를 혼합하면서 게임만의 새로운 색깔을 찾아가는 것이 대세라 롤플레잉 게임인데도 전략 시뮬레이션의 요소가 들어가 있거나 슈팅 게임인데도 어드벤처의 요소가 들어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어드벤처(모험)와 롤플레잉(역할 놀이)이 같은 것은 아니므로 이런 오해는 풀고 넘어가야겠다.

두 장르의 차이점은 많지만 가장 크고 분명한 차이는 바로 자유도에 있다. 어드벤처 게임은 이미 만들어진 모험의 세계 안에서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 정해진 상황에 따라 선택지를 정하고 그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자유도의 폭이 좁은 게임이지만 롤플레잉 게임은 주인공이 이미 만들어진 세계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자유 의지로 정하기 때문에 기본 줄거리가 정해졌다 해도 게이머는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가상 세계라는 점에서는 어드벤처와 롤플레잉이 비슷하지만 자유도는 어드벤처보다 롤플레잉이 월등히 높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그 외에 어드벤처 게임에서는 캐릭터가 이미 정해져 있는 반면 롤플레잉 게임에서는 게이머의 의지에 따라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다르다. 어드벤처 게임은 이야기의 개연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해결을 요하는 문제를 구성할 때 비현실적인 장치들을 통하여 숨겨진 메시지나 유희를 꾀하는 반면 롤플레잉에서는 같은 문제를 구성하더라도 현실성과 개연성은 물론 역할에 따른 참여 등을 고려하는 점도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 장르가 뒤섞이고 복잡한 성격을 띄는 요즘 환경에서는 작은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어드벤처와 롤플레잉은 그 성격이 다르지만 게이머에게 비슷한 장르라고 오해를 받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게임 보급 초창기에 인기를 끌었던 롤플레잉 게임들은 미국식의 자유도 높은 롤플레잉이 아닌 일본식 롤플레잉이라 불리는, 어드벤처 요소가 강한 일방통행 롤플레잉이 대다수였던 탓이다.

<파랜드 택틱스> 시리즈처럼 선택할 수 있는 분기가 거의 없고 전투 혹은 커맨드의 선택에 따라 ‘게임 오버 아니면 미션 클리어’로 진행되어 자유도가 거의 없는 롤플레잉 게임들이 많았다. 이런 롤플레잉 게임은 보통의 롤플레잉 게임과는 달리 어드벤처 롤플레잉 게임(ARPG: 롤플레잉과 어드벤처의 특징이 공존하는 게임)이라는 복합장르로 구분하는 것이 적절하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의 실제 - 기본형과 응용형

다시 어드벤처 게임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제는 어드벤처 게임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 보자. 어드벤처 게임은 탄생된 지 30년이 넘은 장르인 만큼 분류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어드벤처 게임의 범주에 포함되는 ‘기본과 응용’이라는 기준으로 설명한 것이다.

어드벤처의 고전 - 텍스트 어드벤처(Text Adventure)

게임의 모든 구성요소가 텍스트, 즉 글이나 문장 부호만으로 이루어진 어드벤처 게임을 ‘텍스트 어드벤처’라고 말한다. 장르는 다르지만 PC통신 시절의 MUD(Multi-User Dialog) 게임을 생각하면 어떤 형태일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형태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최초로 나온 어드벤처 게임의 초기 형태에 해당하며 어드벤처에 있어서는 고전 중의 고전,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게이머가 1인칭인 ‘나’ 또는 게임의 주인공이 된다는 점은 지금의 어드벤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모든 구성요소가 텍스트이기 때문에 게이머에게 부여되는 상황과 시나리오 역시 모두 글이다. 게이머는 문장을 입력해 캐릭터의 행동을 결정한다.

선택지를 고르거나 행동을 결정짓는 문장은 장르의 특성상 ‘Yes or No’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유형의 게임을 즐길 때에는 자신이 행동할 방향을 정확하게 선택하고 정확한 단어를 이용하여 문장을 입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게임 기술적 측면으로 볼 때 텍스트 어드벤처를 만드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파서’(parser)의 성능이었다. 파서란 프로그래밍에서 컴파일러(compiler: 특정 프로그래밍 언어로 쓰여 있는 문서를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로 옮기는 프로그램)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장치로서 플레이어가 입력한 문장의 핵심 단어를 추려내어 게이머가 입력한 문장대로 게임을 진행시킨다. 따라서 게이머들이 입력한 문장을 파서가 얼마나 잘 이해하고 반영하느냐에 따라 텍스트 어드벤처의 재미와 원활한 진행 여부가 달라지며 이는 곧 게임의 품질로 이어진다.

텍스트 어드벤처는 PC 기술의 발달과 게임 개발자들의 욕구에 따라 서서히 발전하여 삽화 등이 추가되는 방식으로 현대의 어드벤처 게임에 점점 가까워졌다. 텍스트 어드벤처에 삽화와 그래픽 등이 들어간 게임을 그래픽 어드벤처라고 하기도 한다. 참고로 텍스트 어드벤처라는 말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며 텍스트 어드벤처가 처음 태어난 북미 지역에서는 이보다 ‘인터랙티브 픽션’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어드벤처 게임의 응용 : 액션, 퍼즐, 그리고…

텍스트 어드벤처에서 출발한 어드벤처 게임은 시간이 흐르며 PC와 프로그래밍 기술의 발전에 따라 다른 장르의 특징을 흡수하며 발전하기 시작했다. 텍스트 기반의 순수한 고전 어드벤처가 ‘기본형’이라면 기술의 발달과 유행에 따라 다른 장르의 특징을 흡수한 이런 게임들은 ‘응용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응용형 어드벤처 게임 중 게이머들이 가장 접하기 쉬운 것은 다음의 세 가지 부류다.

하나. 액션을 흡수한 액션 어드벤처

본래 어드벤처 게임은 정적인 성향을 가진 장르이지만 여기에 액션이 가미되면서 ‘액션 어드벤처’라는 부류의 게임이 탄생하게 되었다. 선택지와 상황 설정은 액션 게임의 공간 속으로 옮겨졌고 커맨드 입력은 키보드와 마우스 조작으로 대체되었으며 어드벤처 게임에는 없던 액션성과 캐릭터성이 추가되면서 전투 센스와 순발력 등을 요구하는 조작법이 중요해졌다.

액션 어드벤처는 소재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보물이나 특정 대상의 구출 등 시나리오를 통한 액션 어드벤처가 있고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가상 환경을 설정해놓고 게이머가 그 상황에서 탈출하도록 구성한 액션 어드벤처가 있다. 이 두 줄기는 계속 발전해 나가면서 다른 장르의 특징을 흡수하여 이제는 별도의 장르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전자는 ‘잠입 액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후자는 공포 상황에서의 생존을 다루는 점 때문에 ‘호러’(혹은 서바이벌 호러)라는 장르로 굳어졌다.

액션 어드벤처로 사랑 받았던 게임은 여러 타이틀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고전 게임으로 시작해서 비디오 게임으로 계속 변화해 온 <페르시아의 왕자>를 비롯하여 게임 자체보다 라라 크로프트라는 글래머 여주인공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던 <툼 레이더>, 이전의 액션 게임과는 전혀 다른 게임 시스템과 잔잔한 분위기로 마니아들의 가슴에 아련한 추억을 남긴 <이코> 등을 들 수 있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반면 공포를 소재로 한 어드벤처에는 게임 후유증으로 전자제품에서 지지직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등골이 오싹해진다는 말을 들었던 <사일런트 힐>, 사진기로 악령들의 사진을 찍어 퇴치하는 독특한 컨셉트의 <령 제로> 등 일본 게임과 대한민국 최초의 공포 어드벤처인 <제피>, 그리고 손노리가 만든 공포 게임으로 화제를 낳았던 <화이트데이> 같은 게임들을 들 수 있다. 여담이지만 어떤 게이머들은 페르시아의 왕자와 같은 게임은 극악의 난이도 때문에 호러 장르에 넣어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둘, <미스트>로 대표되는 퍼즐형 어드벤처

게임 속에서 만나는 인물의 의사소통이나 주위의 사물을 이용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배제하고 퍼즐이나 암호 또는 기관장치 등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 요소를 해결하면서 게임을 진행해 나가는 어드벤처를 ‘퍼즐형 어드벤처’라고 부른다.

게임 특성상 1인칭 시점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으며 등장하는 퍼즐, 암호, 장치 등의 난이도가 비교적 높다. 또 고전 어드벤처와는 달리 음악, 배경 등으로 세계관과 시나리오를 전달하는 방식이라서 정통 어드벤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퍼즐형 어드벤처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게임이 바로 <미스트> 시리즈다. 시대를 뛰어넘는 훌륭한 그래픽(당시 640×480 해상도의 256칼라 그래픽을 지원했는데 이는 다른 게임보다 몇 년 이상 앞선 것이었다)과 분위기를 잘 살려주는 음악, 논리적으로 잘 짜인 퍼즐 장치, 그리고 미스트만의 개연성을 위한 짜임새 있는 스토리 등이 적절히 어우러져 지금까지 명작 게임으로 불린다.

이런 특징은 후속작인 <리븐>을 비롯해 미스트 시리즈의 마지막 게임인 <미스트 5: 엔드 오브 에이지>까지 잘 계승되었다. 미스트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1,000만 카피 이상 판매되는 기록을 달성하였는데 국민 게임이라 불리는 스타크래프트의 우리나라 공식 판매고가 약 450만 카피인 것을 생각한다면 이 기록이 얼마나 엄청난 위업인지 알 수 있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미스트>의 성공이 어드벤처에 좋은 영향만을 준 것은 아니었다. <미스트>의 호평과 상업적 성공을 지켜 본 많은 게임회사가 비슷한 성격의 퍼즐형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었지만 대부분 ‘어드벤처의 냄새를 찾을 수 없는 퍼즐 맞추기’라는 비아냥만을 들은 채 사라져갔다. 이런 현상을 일으킨 아류작들을 가리키는 말로 ‘미스트 클론’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을 정도였다.

셋,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비주얼 노블

어드벤처 게임의 발전 과정에서 게이머들이 명령어를 일일이 입력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명령어 선택 방식의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파생된 어드벤처 게임의 하나가 바로 ‘비주얼 노블’이다. 게임에 주어지는 모든 상황이 소설처럼 서술되며 게이머는 소설과 같은 스토리 도중에 주어지는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다음 상황의 전개 방향을 정하는 정도로만 게임에 개입한다.

비주얼 노블은 소설을 게임으로 옮긴 것이어서 스토리의 완성도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소설가 등의 전문적인 작가가 시나리오 구성에 참여하고 적절한 일러스트와 게이머의 감성을 이끌어내는 사운드와 효과음이 조화를 이룬다.

이런 구성 때문에 비주얼 노블은 감정 이입과 몰입에 있어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지만 플레이어는 명령어를 선택하는 것 말고는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게이머와 게임 사이의 상호 작용이 그다지 깊지 않다. 또 시나리오와 같은 요소가 게이머에게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실패하면 가치를 잃게 되는 단점도 가진다. 때문에 시나리오로 게이머를 끌어들이는 것을 뒷전으로 하고 흥행을 위해 성(性) 묘사에 치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일본에서 최초로 이 방식의 게임을 만든 회사는 ‘사운드 노블’이라고 불렀지만 그 후 리프사가 만든 비주얼 노블 3연작이 큰 인기를 끌면서 사운드 노블보다 비주얼 노블이라는 이름이 더욱 널리 알려진다. 지금도 사운드 노블과 비주얼 노블이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 비주얼 노블은 일본에서 활발하게 발매되고 있지만 앞서 말한 비주얼 노블의 특성상 게임 대다수는 ‘성인 대상 미소녀 게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비주얼 노블은 두 가지 점에서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는 이 장르의 게임이 상품으로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대개 어둠의 경로로 들어오기 때문에 상품성은 제로에 가깝다. 또 다른 특징은 성인 대상 미소녀 게임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누구도 ‘자유롭게’ 즐길 수가 없다.

비주얼 노블에 해당하는 주요 게임으로는 비주얼 노블이라는 장르를 세상에 알린 리프사의 3연작인 <시즈쿠>, <키즈아토>, <투하트>와 비주얼 노블의 개념을 처음 정립시킨 <제절초>와 <카마이타치의 밤> 등이 있다.

어드벤처에 대한 오해 (2) : 어드벤처의 응용은 어드벤처를 망쳤다?

앞서 퍼즐형 어드벤처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미스트 클론과 같은 부작용을 잠시 이야기했다. 고전 어드벤처만이 순수한 어드벤처라 여기는 이들 중에는 장르의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이런 부작용을 근거로 ‘다른 장르의 특징이 섞이는 바람에 어드벤처 게임의 순수성이 훼손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다지 공감을 얻을 수 없으며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

먼저 미스트 클론과 같은 현상을 지적하면서 어드벤처와 다른 장르가 섞였기 때문에 어드벤처가 망가졌다고 하는 것은 인과관계를 거꾸로 파악한 것이다. 미스트 이후의 퍼즐 어드벤처들이 미스트 클론 취급을 받은 것은 어드벤처의 특성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한 재미를 만들어내지 못한 아류에 그쳤기 때문이다.

고유한 재미가 없는 양산형 게임들이 시장에서 게이머들의 외면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스트를 복제하다시피 따라한 타이틀들을 근거로 어드벤처 게임이 망가졌다고 이야기하는 건 옳지 않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자체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고전 어드벤처 게임은 스스로 한계를 극복하는 데 실패했다. 텍스트 어드벤처와 같은 고전 어드벤처에서 가장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것은 게이머가 입력한 명령어를 인식하는 파서다. 기능 부족이나 버그 현상이 번거로움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생각할 수 있는 단어를 모두 집어넣어도 더 이상 게임을 진행시킬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도 이런 정도의 문제라면 파서의 기능을 강화하거나 서비스 차원으로 매뉴얼 안에 동사집 같은 명령어 매뉴얼을 제공하는 방법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텍스트 어드벤처의 방식에 게이머들이 익숙해지면서 로드/세이브 과정 등을 통해 여러 선택지를 찔러보는 방법으로 엔딩을 점점 빠르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게임 디자이너들은 플레이 타임이 과도하게 짧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특정 상황에 함정을 심는 방법 등으로 게임을 설계했지만 게임 오버나 배드 엔딩과 같은 장치가 게임의 재미를 훼손할 정도로 남발되면서 장르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고전 어드벤처는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어드벤처 게임이 시장에서 외면 받은 이유는 고전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다른 장르의 특징을 흡수하여 변화한 때문이라기보다 몇몇 히트작의 상업적 성공만을 맹종한 양산형 타이틀의 부작용과 고전 어드벤처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드벤처 게임의 역사

70년대 : 미국에서 시작된 어드벤처 게임의 태동

어드벤처 게임의 기원으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1970년대 초반에 프로그래머 윌리엄 크로우더가 만든 <콜러셀 케이브 어드벤처>라는 프로그램이 그 시초라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이 게임은 2단어의 파서로 명령어를 입력해 게임을 진행하는 텍스트 어드벤처였으며 간단하게 <어드벤처>라 불렸다.

그리고 몇 년 뒤인 1976년, <어드벤처>는 프로그래머 돈 우즈의 수정과 확장을 거쳐 세계 최초의 어드벤처 게임으로 판매되었다. 당시 <어드벤처>는 특유의 난해함과 중독성 등으로 매우 큰 호평을 얻었는데 이에 열광한 브루스 대니얼, 팀 앤더슨, 마크 블랭크는 게이머로는 만족할 수 없었는지 자신들의 프로그래밍 기술을 살려 또 다른 어드벤처 게임인 <조크>를 개발했다.

<조크>는 당시 최초의 컬러 그래픽을 실현한 애플 II와 같은 퍼스널 컴퓨터에도 이식되었다. 이 세 사람은 1979년에 인포콤이란 회사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텍스트 어드벤처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한편 로버타 윌리엄스와 그녀의 남편인 켄 윌리엄스 역시 <어드벤처>에 빠져든 희생자(?)중 하나였는데 이들 역시 온라인 시스템즈라는 회사를 세워 삽화가 들어간 최초의 어드벤처 게임인 <미스터리 하우스>를 만들었다.

70년대 말부터 만들기 시작해 1980년 5월에 출시된 이 게임은 상업적으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텍스트에서 그래픽의 세계로 어드벤처 게임의 폭을 넓힌 첫 번째 게임이라는 점에서 더욱 각별하다. 그 뒤 온라인 시스템즈는 <다크 크리스털>, <타임 제로> 등의 성공을 통해 어드벤처 제작사로서 부동의 명성을 쌓아간다.

그러나 온라인 시스템즈라는 회사의 의미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온라인 시스템즈가 바로 고전 어드벤처 게임의 명가라 불리는 시에라 온라인의 전신이기 때문이다. 이후 약 20년 간 시에라 온라인은 또 다른 어드벤처 게임의 명가인 루카스 아츠와 함께 수많은 어드벤처 게임을 내놓으면서 게이머들을 어드벤처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

80년대 : 잠자는 한국, 어드벤처가 진화하는 미국과 일본

70년대 후반에 설립되어 미국의 어드벤처 열풍을 주도하던 온라인 시스템즈가 회사 이름을 시에라 온라인으로 바꾸고 캘리포니아에 안착한 얼마 뒤, IBM은 자사에서 발매한 ‘IBM-PC jr.’의 판매 증가를 위해 킬러 콘텐츠가 될 만한 게임 타이틀을 시에라 온라인에 요청한다. 그리고 시에라 온라인이 이 요청을 받아들여 탄생시킨 게임이 바로 그 유명한 <킹스 퀘스트>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킹스 퀘스트>는 1인칭 시점에서 진행되던 고전 어드벤처와 달리 액션 게임의 요소를 일부 받아들여서 1인칭 시점이 아닌 3인칭 시점에서 방향키를 조작해 캐릭터를 움직이는 매우 참신한 어드벤처 게임이었다. <킹스 퀘스트>는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게임을 즐기기 위해 필요했던 IBM-PC jr.가 당시 400달러나 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시에라 온라인과 IBM 모두에 엄청난 금전적 이익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이후 시에라 온라인은 8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디자이너들의 개성이 가미된 ‘퀘스트’ 시리즈(히어로즈 퀘스트, 폴리스 퀘스트 등)를 잇따라 출시하면서 어드벤처 게임계의 선두주자로 군림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근본 시스템은 70년대부터 고수해 온 고전적인 명령어 입력 방식 그대로였다. 자연히 명령어 입력 방식에 대한 한계와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불만은 루카스필름 게임즈의 디자이너인 론 길버트가 고안한 스컴(SCUMM : Script Creation Utility for Maniac Mansion)이라는 스크립트 언어가 나와 게이머가 더 이상 명령어를 직접 입력하는 수고를 겪지 않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약간 우스운 것은 정작 스컴을 활용한 최초의 어드벤처 게임인 <매니악 맨션>은 스컴을 활용하는 데 필요한 마우스 커서의 움직임이 지독할 정도로 느렸기 때문에 게임에 몰입하는 데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애플 II용이던 <매니악 맨션>은 IBM PC에 이식된 뒤 마우스 조작에 큰 문제가 없어졌고 이 기능은 어드벤처 게임은 물론 다른 유형의 게임 개발에도 유용하게 쓰이게 되었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한편 일본에서는 1970년대 후반 개인용 PC가 등장하면서 시장이 형성되었고 1982년에 마이크로캐빈의 <미스터리 하우스>라는 어드벤처 게임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일본의 어드벤처 게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참고로 이 게임은 미국의 온라인 시스템즈가 만든 게임과 이름이 같다.

미스터리 하우스는 제목 그대로 집에 들어가 어딘가에 있는 보물을 찾아내 집을 탈출하는 게임으로서 요즘 유행하는 방탈출 게임을 보는 듯하다. 이 게임은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듬해에 <미스터리 하우스 2 : 명탐정 등장>이라는 속편까지 제작되었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이후 8색 그래픽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트를 번갈아 찍어 중간색을 나타내는 ‘타일페인트’ 기법을 처음 이용한 허드슨 소프트의 <디즈니랜드>와 T&E소프트의 <혹성 메피우스>, 추리 어드벤처인 <포토피아 연속살인사건>, 일본의 원조 어드벤처 명가인 마이크로캐빈의 <드림랜드>, 일본 호러 게임의 원조 격인 <사령전선> 등 여러 어드벤처 게임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일본 게임하면 적잖은 이들이 떠올리는 미소녀게임인 <천사들의 오후>도 이 시기에 나온 게임이다. 이 게임은 최초의 성인용 게임은 아니었지만 일본식 미소녀게임의 원형을 제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종이에 그린 원화를 스캔한 뒤 컴퓨터로 채색해 일러스트를 만든 최초의 게임이라는 점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이렇게 일본의 어드벤처 게임들은 80년대에 다양한 타이틀이 쏟아지면서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것 외에도 비디오 게임의 고전 어드벤처로서 유명한 닌텐도의 <패미컴 탐정 클럽>과 같은 게임도 이 시기에 나왔으며 스퀘어는 애니메이션 기술을 게임에 접목하여 <윌>, <알파> 등 애니메이션을 전면에 내세운 어드벤처를 만들기 시작했다. 또 명령어 입력 방식의 결점을 보완한 일본 최초의 명령어 선택식 어드벤처 게임인 <오호츠크로 사라지다!> 역시 동시대에 발매되었다.

명령어 선택식 어드벤처 게임의 출현으로 인해 게이머들은 더 이상 단어 찾기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게임을 끝내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급격히 줄어 버렸다. 따라서 개발자들은 플레이어를 만족시키려고 시나리오를 늘리거나 난이도를 높게 조정해 플레이 타임을 늘리는 방법을 취했다.

어느 쪽이든 한계가 있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어드벤처 게임은 점차 일본에서 크게 돈 안 되는 사업이 되어 갔다. 1980년대에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던 스퀘어-에닉스가 1980년대 중후반부터 <드래곤 퀘스트>나 <파이널 판타지> 등 롤플레잉 게임에 뛰어들기 시작한 이유도 어드벤처 게임의 사업성 악화에 어느 정도 원인이 있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이렇게 미국과 일본에서 어드벤처가 발전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는 80년대 초반에서야 PC 보급이 시작되었다. 자연히 어드벤처 게임 보급 역시 늦어졌다. PC를 기반으로 한 최첨단 시대가 20~30년 뒤에 열린다는 식의 근거를 알 수 없는 이야기와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 덕분에 PC 보급에 엄청난 가속도가 붙긴 했지만 80년대 한국에서 PC 게임은 어디까지나 소수의 마니아들을 위한 취미였다. 그나마 <신검의 전설>과 같은 RPG가 시장에 나왔을 뿐 이름이 알려질 정도의 상용 어드벤처 게임은 80년대가 끝날 때까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90년대: 어드벤처의 영광과 쇠퇴

대한민국 - 빛을 보지도 못하고 져 버린 새싹

우리나라는 게임업계의 걸음마가 막 시작되던 80년대를 지나 90년대 들어서 루카스 아츠와 시에라 온라인의 명작 어드벤처가 동서게임채널을 통해 소개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 제품들은 한글화가 거의 되지 않아 소수의 마니아들을 제외하면 진입장벽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국내 게임업계 역시 90년대 중반까지 모방의 단계를 거치면서 치밀한 구성과 기획력 등이 필요한 미국식 어드벤처보다는 아케이드 게임이나 일본식 롤플레잉(앞서 잠시 언급했던 어드벤처성이 짙은 롤플레잉 게임)을 주로 만드는 장르 편중 현상을 보였다. 16비트 PC를 이 시기에 처음 접한 게이머들 역시 한글화의 압박 없이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을 선호했는데 이 역시 게임회사들의 장르 편중에 영향을 끼쳤다.

국산 어드벤처 게임 역시 초기에는 해외 어드벤처 게임들의 영향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한 게임들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파더 월드>나 <아임> 같은 초창기 어드벤처 게임들은 동시대의 해외 어드벤처 게임들에서 모티브를 따온 게임이었다.

우리나라 고유의 이야기를 엮은 <오성과 한음>과 같은 코믹 아케이드 어드벤처는 같은 장르인 <고블린> 시리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다만 현대전자의 <얼굴 없는 스파이>는 이런 분위기를 살짝 비껴가는 게임이었는데 중학교 교과과정과 관련된 내용을 게임으로 만든 이른바 에듀테인먼트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1997년에 대한민국 어드벤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게임이 나타났는데 바로 <디어사이드 3>다. 국내의 다른 게임과는 달리 미래의 쿠데타를 소재로 여러 진지한 이야기들을 다소 음울한 분위기로 잘 담아낸 게임이었다. 특히 어드벤처로 진행되다가 슈팅액션 게임으로 전환되는 부분이 매우 이채로웠던 독특한 게임이다. 하지만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쓸쓸히 시장에서 사라졌으며 4편까지 존재했던 <디어사이드> 시리즈 중 세간에 이름을 알린 것은 3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의 열풍 속에서도 대한민국에서는 3D와 사진 배경을 혼합한 <황금 임파서블>이나 최초의 국산 호러 어드벤처인 <제피> 같은 게임이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었고 <가이스터즈> 같은 액션 어드벤처도 출시되었다.

그러나 이런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어드벤처 게임 시장은, 아니 대한민국의 패키지 게임 시장은 몇몇 대작 게임을 제외하고 급속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게이머에게는 ‘게임=제품’이라는 인식이 거의 없었던 데다 90년대 후반부터 급속하게 퍼져 나간 와레즈 사이트와 게임 월간지들의 과도한 번들 경쟁도 원인이었다.

결국 우리나라의 어드벤처 게임들은 가능성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리니지>를 위시하여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게임의 온라인화와 시장의 주류였던 롤플레잉 게임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일본 - 남은 것은 공포, 그리고 미소녀

80년대부터 어드벤처 게임이 다양하게 발전한 일본 역시 16비트 컴퓨터의 발전으로 인해 어드벤처 게임의 화질이 많이 향상되었으며 화질 향상을 뛰어넘어 어드벤처 게임 속에 음성과 동영상을 넣는 작업도 본격화되었다.

동영상과 음성의 동기화가 시도된 같은 게임이 나왔으며 보통 사람들이 애니메이션 제작사로만 알고 있는 가이낙스가 자사의 애니메이션 소재와 기술을 활용하여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사일런트 뫼비우스> 등의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어 낸 것도 이 즈음이다.

이런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들은 음성지원 덕택에 CD 한 장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용량이 큰 것이 많았다. 문제는 이런 게임들이 좋은 반응을 얻어 시장에서 잘 팔린다면 다행이지만 팔리지 않으면 적자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더욱이 어드벤처 게임들은 일본 롤플레잉 게임의 양대 산맥에 해당하는 <드래곤 퀘스트>와 <파이널 판타지> 같은 대 히트작에 밀려 1980년대 후반부터 대박 게임에서 밀려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드벤처 장르는 게이머들의 수요에 맞는 콘셉트의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바로 ‘공포’와 ‘미소녀’였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일본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공포를 소재로 다룬 같은 어드벤처 게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치 공포영화가 시리즈물로 제작되는 것처럼 공포게임들 역시 좋은 반응을 얻으면 시리즈물로 제작되곤 했는데 북미에서는 <레지던트 이블>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캡콤의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와 라디오 소리, 안개 효과라는 소재로 공포감을 가중시켰던 <사일런트 힐>이 대표적이다. 이 두 게임은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비주얼 노블류 게임은 앞서 잠시 이 부류의 게임에 대해 설명했듯이 <제절초> 이후 리프사의 비주얼 노블 3연작에 의해 개념이 정립되었다. 비주얼 노블 유형의 게임은 상대적으로 고도의 프로그래밍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다양한 타이틀이 생겨나며 <동급생>, <피아캐럿> 시리즈 등 성인용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과 함께 ‘미소녀게임’이라는 분류(?)로 묶여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미국 - 어드벤처 영욕의 10년

1990년대 초반 루카스필름 게임즈는 회사 이름을 루카스 아츠로 바꾸고 론 길버트가 만들어 낸 세기의 명작 어드벤처 게임 <원숭이 섬의 비밀>과 영화로도 나온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로 어드벤처 게임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전통의 어드벤처 명가인 시에라 온라인 역시 1980년대부터 발매하기 시작하여 총 8편이 출시된 <킹스 퀘스트> 시리즈와 성인용 코믹 어드벤처의 대명사인 <래리>, 그리고 <가브리엘 나이트> 시리즈 등으로 1990년대 초중반의 어드벤처 황금기에 한 몫을 담당했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1990년대 초중반 어드벤처의 황금기를 주도한 이 두 회사의 게임은 특징이 사뭇 다르다. 시에라 온라인이 고전 어드벤처의 모습을 <킹스 퀘스트> 시리즈로 지켜 가면서 <가브리엘 나이트> 등의 다른 시리즈에서는 실험적 시도에 더욱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발전을 모색했다면 루카스 아츠는 <원숭이섬의 비밀>, <그림 판당고>처럼 게임 자체에서 루카스 아츠만의 패러디와 해학, 풍자를 보여주며 많은 인기를 끌었다.

기술적인 변화도 두 가지 있었는데 음성 지원도 이 시기부터 도입되어 <셜록 홈즈의 탐정 강좌>나 <스페이스쉽 워록> 같은 음성 지원 어드벤처 게임들이 발매되었다. 루카스 아츠와 시에라 엔터테인먼트 역시 자신들의 대표작에 음성 지원 기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게임의 음성 지원은 곧 게임 용량의 대형화로 이어졌고, CD-ROM을 채용한 비디오 게임기가 가정에 빠르게 보급된 일본보다 다소 늦었지만 북미 지역 역시 CD-ROM을 이용한 게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다른 하나의 기술적 변화는 바로 어드벤처 게임의 3D화다. 북미 지역 호러 게임의 시초로 일컬어지는 <어둠 속에 나 홀로> 시리즈와 세계적인 액션 어드벤처 바람을 불고 온 에이도스의 <툼 레이더> 시리즈 등이 게이머들에게 폴리곤이라는 말을 처음 듣도록 만든 3D 어드벤처 게임이다.

3D 그래픽은 처음엔 매우 어설픈 수준이어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상자 덩어리 같았지만 PC의 비약적 기술 발전에 맞추어 나날이 향상되어 갔다. 그러나 이런 기술적 발전보다 어드벤처 게임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친 게임 타이틀이 있었으니 바로 1994년 출시되어 어드벤처의 역사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게임 <미스트>다.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운 그래픽, 훌륭한 배경음악과 효과음, 그리고 제작사인 사이언이 과거 에듀테인먼트 게임을 제작했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노하우인 손쉬운 인터페이스와 멀티미디어 활용 기법이 접목되어 <미스트>는 최고의 어드벤처 히트작이 되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다수의 미스트 클론까지 나오게 하는 위력도 발휘했다.

이렇게 1990년대 중반까지 황금기를 이어 오던 미국의 어드벤처들은 1990년대 중후반 들어 ‘멸망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급격히 쇠퇴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주요 요인으로는 게임의 온라인화, 대용량화 등으로 인한 유행 변화와 아시아 지역 금융위기로 인한 불황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미국의 게임회사와 어드벤처 게임 마니아들에게 강력한 충격을 준 상징적인 두 가지 사건 때문이다.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루카스 아츠의 역작인 <그림 판당고>의 처참한 실패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그림 판당고>는 루카스 아츠의 팀 섀퍼가 만든 게임으로서 멕시코 사람들이 말하는 아즈텍 설화 속의 사후 세계를 루카스 아츠 특유의 유머 감각과 홍콩 액션 영화의 오마쥬까지 가미하여 만든 아주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조작법이 이전 루카스 아츠 게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정도의 단점은 있었지만 이런 단점 정도는 가뿐하게 묻어버릴 만큼 게임의 여러 요소들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10년이 넘은 지금에 와서도 ‘웰메이드 게임’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타이틀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정작 이 게임은 루카스 아츠라는 회사의 명성까지 있었음에도 시장에서 불가사의할 정도로 외면을 받았다. 더욱이 <그림 판당고>는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스타크래프트>까지 누르고 1998년도 ‘올해의 게임’에 선정될 만큼 자타가 완성도를 인정하는 게임이었기에 그 충격은 심각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한글화 미비로 시장에서 참패했다.

<그림 판당고>의 참패로 어드벤처 게임계가 휘청거리는 상황이었지만 충격적 사건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루카스 아츠와 더불어 어드벤처 게임계를 주름잡아 온 명가인 시에라 온라인(폐쇄 당시의 이름은 요세미트 엔터테인먼트)이 1999년 2월 22일 문을 닫은 것이다. 시에라 온라인의 창업주인 윌리엄스 부부는 이미 1996년 회사를 매각했고 시에라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모회사로 유명한 비벤디(시에라를 매입할 때는 하바스)에 팔린 상황이었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위기 속에 시에라 엔터테인먼트는 <킹스 퀘스트> 시리즈의 여덟 번째 타이틀인 <킹스 퀘스트 8>과 풀 3D 어드벤처 게임인 <가브리엘 나이트 3>을 1998년과 1999년에 연이어 출시했다. 하지만 <킹스 퀘스트 8>은 당시 유행하던 액션을 어설프게 따라가는 데에 급급해 본래의 재미를 잃어버려 골수팬까지 등을 돌리게 만들었고 <가브리엘 나이트 3>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형편없는 그래픽으로 혹평을 받았다.

이 두 게임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고 이후 시에라 온라인은 직원이 10명도 남지 않는 규모로 급격하게 축소되었다. 결국 1999년 2월 22일 월요일, 비벤디는 시에라 온라인뿐만 아니라 시에라 산하의 여러 개발팀을 모두 폐쇄시켜 버렸다. 어드벤처 게임 팬들은 1999년 2월 22일을 ‘체인톱 월요일’(다른 말로는 블랙 먼데이)라고 불러 당시의 슬픔과 좌절감을 나타내고 있다.

다행히 시에라 온라인이 유통한 밸브의 <하프라이프>가 흥행에 성공하며 회사의 명맥은 좀 더 유지되었지만 시에라 온라인은 이 시점 이후 게임 개발을 하지 않는 게임 유통사로 바뀌었다. 그리고 끝내 2004년 6월 비벤디가 자사의 조직을 비벤디 유니버설로 재편하면서 시에라 온라인은 브랜드 이름만 남긴 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미국의 어드벤처 제작 환경과 시장 상황이 이렇게 급속도로 나빠지는 와중에 노르웨이의 펀컴이 출시한 <롱기스트 저니>가 흥행에 성공하며 어드벤처 게임의 불씨를 근근이 살려낸 것은 어드벤처 게임 개발의 중심이 북미에서 유럽으로 옮겨지는 조용한 변화였다.

21세기, 어드벤처 게임은 어디에 있나?

2000년을 넘어 온라인 기반의 게임 환경이 급격하게 정착된 현재, 얼핏 보면 어드벤처 게임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아 보인다. 물론 어드벤처가 완전히 고사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어드벤처 게임들이 과거의 황금기처럼 시장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미국, 일본, 한국 중 그나마 어드벤처 게임이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을 꼽자면 아마 일본을 꼽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공포와 미소녀를 소재로 한 어드벤처 게임들의 시리즈가 계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코>와 같은 정통 어드벤처에 가까운 게임은 되레 예외 취급을 받을 정도로 드문 것이 일본 어드벤처 게임 시장의 현실이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미국의 경우 루카스 아츠와 시에라 온라인이라는 어드벤처 게임의 명가들이 어드벤처 개발 중단과 폐쇄 등으로 사라진 충격은 매우 컸다. 현재 미국에서 전통적인 어드벤처 게임을 사려면 어드벤처 게임 전문 유통사를 통한 인터넷 구매나 이베이를 통한 경매 방식의 물물교환 외에는 마땅한 수단이 없으며 즐기는 게이머들 역시 소수의 마니아들에 그치게 되었다.

현재 영미권에서 소비되는 전통적인 어드벤처 게임들은 유럽에서 많이 생산되고 있고 그 형태도 패키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과거 명작의 리메이크를 포함한 프리웨어와 웹 게임, 인디 게임 등으로 다양하다.

물론 미국에서 어드벤처 게임이 전혀 제작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CSI나 응급실처럼 유명한 미국 드라마 타이틀의 판권을 가져와 어드벤처 게임으로 제작하고 있다. 물론 과거 어드벤처 게임이 주류였던 때처럼 독창적 세계관과 스토리, 재미를 지닌 어드벤처들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세 나라 가운데 가장 안 좋다. 2000년대 초반에 발매된 <화이트데이>와 <제피 2> 이후 더 이상의 게임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패키지 게임 자체가 거의 완벽하게 고사한 상태다. 명작이라고 불러도 아깝지 않은 손노리의 화이트데이조차 와레즈 같은 불법공유로 큰 피해를 봤다. 이런 상황이니 ‘좋은 게임이면 다 산다. 질이 떨어지니 안 샀지’라는 변명은 적어도 우리나라에는 소용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어드벤처 게임 역시 완전히 없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방탈출>을 비롯한 모바일 형태의 게임이나 광고, 판촉용 혹은 아마추어 개발자들의 플래시 게임 등으로 어드벤처 게임들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에 비공개 테스트를 실시한 <파이널 퀘스트>와 같은 온라인 게임에서는 고전 어드벤처 게임에서 한번쯤 봤을 법한 장치들을 만날 수 있다.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주류 시장에서 어드벤처 게임을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어드벤처 게임은 이미 없어졌다’는 말을 하는 이도 있는데 지금까지 이야기했듯이 미국, 일본, 한국의 사례를 보면 어드벤처는 없어지지도 않았고 없어진 적도 없다. 다만 어드벤처 게임들은 예전과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있을 뿐이며 과거의 게이머들이 그리워하던 전통적인 형태의 어드벤처 게임을 보기가 매우 어려워졌을 뿐이다.

추억의 어드벤처 게임 베스트 4

원숭이 섬의 비밀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원숭이 섬의 비밀>을 처음 접했을 때 필자의 집엔 PC가 없었다. 게임을 하고 싶은 필자는 학교의 컴퓨터실에서 눈치를 보며 짬짬이 게임을 즐기곤 했다. 윈도가 나오기 전의 PC에 Alt+Tab 기능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에 필자는 게임을 하다가 가끔 컴퓨터 담당 조교에게 걸려 곤욕을 치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엔 다른 게임에서는 접한 적이 없었던 독특한 그래픽에 끌려 이 게임을 즐겼지만 나중에는 게임 속에 숨어있던 재미를 하나씩 찾아나가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아무리 그 때 열심히 게임을 즐겼다 해도 <원숭이 섬의 비밀> 시리즈의 재미를 1/3도 맛보지 못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영어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미스트

어드벤처 게임 <어드벤처 게임>

필자가 최초로 엔딩을 보고 눈물을 흘린 게임이 ‘창세기전 II’였다면 필자가 최초로 머리가 산산이 쪼개질 정도의 느낌을 받은 게임은 바로 미스트 시리즈다.

발매된 지 몇 년 후에야 즐기긴 했지만 ‘미스트 I’를 플레이 했을 때 받은 첫인상은 새로움이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고 게임을 즐기면서 난해한 퍼즐들을 대했을 때는 ‘내가 지금까지 머리가 좋아서 게임을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하는 좌절감까지 들 정도였다.

아마 지금 미스트를 다시 즐긴다 해도 필자는 미스트에 의해 처음 고통 받았을 때처럼 다시 머리를 쥐어뜯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슬프게도 그 동안 공략을 다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시즈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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