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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버블 시대가 낳았던 괴(怪)컴퓨터 '세가 테라 드라이브'

발행일시 : 2007-05-31 11:01

소닉, 버철 파이터 등으로 유명한 세가는 게임기와 게임 소프트 그리고 각종 장난감을 만드는 완구 회사다. 세가가 기업 경영의 최고 절정기를 맞았던 때는 거품 경기가 한창이던 1989년-1991년 사이였다.

1988년에 출시했던 최초의 16비트 게임기 메가 드라이브가 북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닌텐도를 압도하고 있었고, 일본 자국에서의 소프트웨어 판매량도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세가는 다양한 차세대 하드웨어 프로젝트를 발족시킨다.

CD-ROM을 이용한 게임기로 메가 드라이브의 확장 옵션적 성격을 띄었던 ‘메가CD’와 컬러 LCD를 장착한 휴대용 게임기 ‘게임 기어’ 그리고 게임기와 PC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PC인 테라 드라이브 등이 그것이었다.

■ 게임기보다는 컴퓨터를 원했던 세가

세가는 과거부터 가정용 컴퓨터에 강하게 집착하고 있었다. 1983년 세가가 처음으로 내놓았던 가정용 게임기 SC-3000도 게임기가 아닌 가정용 컴퓨터의 일종이었다. 하지만 SC-3000과 함께 출시했던 SC-3000의 많은 기능 중 오로지 게임에만 특화된 염가판 SC-1000 쪽의 인기가 높아 세가는 그 후로 계속 컴퓨터(SC-3000)가 아닌 게임기(SC-1000)를 팔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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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1000은 나름 인기를 얻어 패미콤 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히 성장해나갔고 세가는 그 분위기를 더욱 키우기 위해 최초의 16비트 가정용 게임기를 내놓게 된다. 그것이 1988년 10월에 출시된 ‘메가 드라이브’였다. 당시 일본은 PC조차 8비트가 주류였던 시대였기 때문에 16비트 게임기의 등장은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에 탄력을 받았는지 세가는 과거 한 번 실패했던 가정용 PC에 게임기를 결합한 하드웨어에 또 다시 도전한다. 그것이 ‘테라 드라이브’다.

세가가 IBM과 공동 개발한 PC와 메가드라이브의 복합기 ‘테라 드라이브’. 80286에 메가드라이브 카트리지를 구동 시킬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하드웨어였다. <세가가 IBM과 공동 개발한 PC와 메가드라이브의 복합기 ‘테라 드라이브’. 80286에 메가드라이브 카트리지를 구동 시킬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하드웨어였다.>

■ 절름발이 컴퓨터였던 테라 드라이브

테라 드라이브의 개발은 IBM과 공동으로 이루어졌다. PC플랫폼은 당시 서서히 세계를 장악해가고 있던 PC AT 규격을 채택하고 DOS 시스템의 일부를 롬으로 동작시키는 방식을 채용하는 등 상당히 선진적인 시도가 이루어졌다. PC 부팅 시에도 독자적인 운영체제를 실행시켜 그 안에서 파일 탐색, 실행, 디스크 복사, 포맷 등 기본적인 PC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테라 드라이브는 상당히 불완전한 반쪽 짜리 하드웨어였다.

세가는 CPU 선택에 가장 큰 실수를 범하고 만다. 테라 드라이브는 80286과 68000 그리고 Z80A 등이 하나의 메인보드 위에서 동작하는 하드웨어다. 테라 드라이브에 탑재된 68000은 메가 드라이브에 탑재된 7.6MHz 버전보다 빠른 도시바 10MHz 버전(TMP-68HC000N-10) 68000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PC 부분을 담당하는 CPU에 있었다.

테라 드라이브가 출시되던 1991년은 이미 PC 시장의 흐름이 286에서 386으로 넘어가 있었다. 하지만 테라 드라이브는 제조 원가 등의 문제로 386이 아닌 286을 채용했다. 그나마 채용된 80286이 세컨드 파티였던 AMD의 N80L286으로 동작 클럭수는 80286의 주류였던 16MHz도 아닌 10MHz인 물건이었다. 386도 아니면서 286에서도 한 시대 뒤쳐지는 CPU를 채용한 것이다.

테라 드라이브에는 당시 주류였던 80386이 아닌 80286 호환 CPU였던 AMD의 N80L286이 탑재되었다. 동작 클럭도 당시 286의 후기 모델들의 주류였던 16MHz보다도 떨어지는 10MHz였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CPU의 업그레이드 조차 불가능 했다는 것. <테라 드라이브에는 당시 주류였던 80386이 아닌 80286 호환 CPU였던 AMD의 N80L286이 탑재되었다. 동작 클럭도 당시 286의 후기 모델들의 주류였던 16MHz보다도 떨어지는 10MHz였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CPU의 업그레이드 조차 불가능 했다는 것.>
일본 버블 시대가 낳았던 괴(怪)컴퓨터 '세가 테라 드라이브'

메인보드에도 문제가 있었다. CPU가 소켓 방식이 아닌 메인보드에 납땜 되어 있는 온보드 CPU였으며, 메인 메모리도 2.5MB가 인식 한계 수치였다. 최상위 기종인 테라 드라이브 모델3에서는 2.5MB 메모리가 기본 탑재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테라 드라이브가 인식할 수 있는 가장 큰 메모리 용량이었다.

확장 카드는 ISA 카드 1개를 탑재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12V가 공급되지 않아 사운드 블라스터 등의 주변기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메인보드에는 분명히 야마하의 FM 음원칩인 YM3438이 탑재되어 있지만 이것은 오로지 메가 드라이브로 동작할 때만 동작하며 PC 모드일 때는 사용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하드디스크의 인터페이스가 IBM-Jr이라고 불리는 IBM PS/2 PC에 사용되었던 전용 인터페이스로 하드디스크의 호환성이 전혀 없었다.

IBM-Jr이라는 독자적인 44핀 규격을 사용한 하드디스크. IBM 순정품으로 당시 IBM 서버 머신들에 탑재되던 제품과 완전히 동일한 품질의 하드디스크였다. 하지만 호환성은 전혀 없었다. <IBM-Jr이라는 독자적인 44핀 규격을 사용한 하드디스크. IBM 순정품으로 당시 IBM 서버 머신들에 탑재되던 제품과 완전히 동일한 품질의 하드디스크였다. 하지만 호환성은 전혀 없었다.>
단 1개뿐인 ISA 슬롯이었지만 12V가 공급되지 않아 사운드 블러스트 등의 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이 문제 때문에 세가에서는 사용자가 원할 경우 ISA 슬롯에 12V가 공급되도록 제품을 개조해 주었다고 한다. <단 1개뿐인 ISA 슬롯이었지만 12V가 공급되지 않아 사운드 블러스트 등의 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이 문제 때문에 세가에서는 사용자가 원할 경우 ISA 슬롯에 12V가 공급되도록 제품을 개조해 주었다고 한다.>

내장된 DOS에도 다소 문제가 있었는데, 테라 드라이브는 DOS 시스템 일부를 ROM에서 구동하는 매우 혁신적인 방식의 하드웨어다. 이 덕분에 286임에도 부팅이 일반 가전기기 수준으로 빠르다. 하지만 ROM에 내장된 DOS는 IBM-DOS 4.0으로 하드디스크 호환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그 버전이다. 더군다나 ROM에서는 일본어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어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ROM으로 DOS를 일단 띄운 후 다시 하드디스크에 있는 DOS/V를 구동시켜야 하는 복잡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제품의 컨셉트 그 자체에 있었다. ‘PC + 메가 드라이브’라고 한다면 당연히 PC를 구동시키는 가운데 메가드라이브 게임이 구동되는 방식이어야 한다. 하지만 테라 드라이브는 전면에 있는 MD<->PC 절환 스위치를 이용해 PC와 메가 드라이브 오가는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그저 2대의 하드웨어를 하나의 기판으로 조립해 하나의 껍데기 속에 넣은 절름발이 하드웨어였던 것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버튼을 이용해 PC와 메가 드라이브 기능을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오른쪽에 보이는 버튼을 이용해 PC와 메가 드라이브 기능을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 IBM의 장인 정신과 세가의 도전 정신이 만나다

IBM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철학을 이야기 하자면 누구라도 ‘장인 정신’을 이야기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세가는? 세가는 과거부터 일본 기업들이 누구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을 과감하게 시도해왔다.

누구도 인터넷을 관심 갖지 않을 때 게임기에 인터넷 기능을 넣고, 모두 흑백 디스플레이의 휴대용 게임기를 만들 때 컬러 디스플레이를 선택했다. 그런 세가의 철학은 한 마디로 ‘도전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둘이 만나 멋진 상승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 실험은 실패로 돌아간다.

하드웨어 마니아가 테라 드라이브의 케이스를 열어 내부를 들여다본다면 첫 마디부터 감탄사가 흘러 나올 것이다. 거의 완벽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칩(CHIP)들의 배열에 탄성이 흘러 나올 것이다. 게다가 사용된 부품들은 당시 IBM의 서버 머신을 뜯었을 때나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부품뿐이다.

대만산 부품은 찾아볼 수 없고 모든 것이 미국산 아니면 일본산 부품들이며 기판의 로고는 물론 작은 숫자까지 전부 실크 인쇄 처리를 했다. 내부의 철제 구조물에 전부 라운딩 처리를 해서 조립 시에 손을 다치지 않게 배려하고 공장 출하 시에는 사용하지 않는 확장 슬롯에는 플라스틱으로 된 전용 보호 덮개를 씌워 놓았다.

조립에 사용된 나사마저도 명품의 체취가 느껴질 정도로 고급스러운 것들이다. 심지어는 내장된 스피커마저 메가드라이브의 음색을 완벽하게 재생할 수 있는 1.5인치 유니트였다.(비프음을 내기 위해 내장되는 PC 스피커와는 격이 다르다. 이 스피커 덕분에 외부 스피커를 연결하지 않고도 게임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이렇듯 고급스러운 부품을 사용해 제품 가격을 248000엔(모델3 기준)까지 올려 놓고도 CPU는 386이 아닌 286에 10MHz 버전이라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어쩌면 이것이 장인 정신과 도전 정신이 만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예술 작품을 보듯이 완벽하게 설계된 기판. 부품들의 면면도 범상치 않다. <예술 작품을 보듯이 완벽하게 설계된 기판. 부품들의 면면도 범상치 않다.>
사용하지 않는 슬롯에는 이렇게 플라스틱 캡을 씌우고 경고문까지 인쇄해 놓았다. <사용하지 않는 슬롯에는 이렇게 플라스틱 캡을 씌우고 경고문까지 인쇄해 놓았다.>

둘의 만남의 결과는 운영체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테라 드라이브는 ROM에 DOS 시스템 일부를 내장해 동작하는 방식이다. PC에 전원을 넣으면 우선 ROM에 있는 DOS로 부팅되고 역시 ROM에 내장되어 있는 전용 그래픽 인터페이스(GUI)가 표시된다.

이 전용 GUI는 탐색기 기능과 디스크 포맷 및 카피, 각종 설정 등을 수행할 수 있다. 탐색기에서는 하드디스크와 플로피 디스크에 있는 파일을 검색해 실행할 수 있는데, 실행 파일이나 배치 파일의 실행뿐만 아니라 문서를 읽거나 설정 파일을 수정하는 것도 가능하다.(과거 DOS용 프로그램이었던 MDIR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면 된다.)

ROM에서 구동하기 때문 시스템 파일의 대부분이 램 상주가 아니라서 상당히 많은 양의 메모리를 확보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 ROM DOS에서는 커맨드를 전혀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단지 파일의 실행만 가능하다. 여기다 일본어가 지원되지 않아서 일본어로 된 문서는 모두 글자가 깨져 보인다. DOS의 커맨더를 사용하고 일본어도 보기 위해서는 DOS/V로 부팅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결국 ROM DOS는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PC로 부팅할 경우 나오게 되는 전용 ROM DOS의 GUI. 지금 기준으로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형태였다. 하지만 DOS 커맨드를 사용할 수 없어서 하단의 DOS 버튼을 눌러 DOS/V로 다시 부팅해야만 제대로 된 PC로 활용할 수 있었다. <PC로 부팅할 경우 나오게 되는 전용 ROM DOS의 GUI. 지금 기준으로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형태였다. 하지만 DOS 커맨드를 사용할 수 없어서 하단의 DOS 버튼을 눌러 DOS/V로 다시 부팅해야만 제대로 된 PC로 활용할 수 있었다.>
기본 탐색기에서는 파일의 실행과 문서 읽기만 가능하다. <기본 탐색기에서는 파일의 실행과 문서 읽기만 가능하다.>
게다가 일본어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게다가 일본어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DO/V로 부팅하면 PC가 리셋되면서 DOS/V 4.0으로 다시 부팅된다. 이제부터는 DOS의 기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DO/V로 부팅하면 PC가 리셋되면서 DOS/V 4.0으로 다시 부팅된다. 이제부터는 DOS의 기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 실험 뒤에 남은 것은 슈퍼 메가드라이브와 키보드뿐?

테라 드라이브는 모델1, 모델2, 모델3 등 모두 3가지 버전이 출시되었지만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테라 드라이브는 하드웨어적인 완성도는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마니아들에게는 인기가 높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키보드와 전용 모니터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테라 드라이브의 키보드는 IBM에서 생산한 물건으로 당시의 IBM 서버용 키보드와 완전히 동일한 물건이었다. 지금이야 서버에도 아무 키보드나 연결해 쓰지만 당시만 해도 IBM 서버용 키보드는 상상하기 힘든 고가의 명품 키보드였다. 하지만 테라 드라이브용 키보드는 테라 드라이브 자체가 실패했던 여파 때문에 한 동안 매우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었고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키보드를 위해서 본체를 구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모니터 또한 마니아들에게 환상의 수집품으로 알려졌는데, 79800엔이라는 고가에 출시되었던 테라 드라이브 전용 모니터는 14인치의 CRT였지만 기본적으로 15/32KHz 업다운 스캔이 지원되는 모니터였다. 이 때문에 게임 마니아 사이에서는 테라 드라이브 전용 모니터가 상당한 고가에 거래되었던 적도 있었다.(마치 국내에서 대우의 MSX2 전용 모니터가 게임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였던 것과 비슷하다.)

테라 드라이브를 구매했던 소비자에게 있어서는 결국 PC보다는 메가 드라이브 쪽의 기능이 더욱 쓸모가 있었다. 일부 메가 드라이브의 게임을 보다 빠른 속도로 즐길 수 있었고, 무엇보다 메가 드라이브 게임을 TV가 아닌 PC용 모니터에서 깨끗한 화질로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테라 드라이브 본체 동봉 키보드. 본체보다도 오히려 키보드 쪽의 인기가 더 높았다. <테라 드라이브 본체 동봉 키보드. 본체보다도 오히려 키보드 쪽의 인기가 더 높았다.>
메가 드라이브 게임을 PC용 모니터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만이 테라 드라이브 사용자들에게는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메가 드라이브 게임을 PC용 모니터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만이 테라 드라이브 사용자들에게는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 버블과 함께 사라져버린 PC

전혀 쓸모 없는 일을 비효율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속어로 ‘삽질’이라고 한다. 군대에서 무의미하게 구덩이를 팠다가 다시 메우는 작업을 반복하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기업으로 그 대상을 한정한다면 전혀 잘 팔릴 것 같지 않은 제품을 너무 많은 시간과 자본을 투자해 만들어내고, 결국은 실패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PC업계에서의 삽질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일본의 전자제품 회사들이 유난히 많이 연관되어 있는데, 이것은 일본의 버블이 절정이었던 시기였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세가의 테라 드라이브도 버블과 함께 태어났다 버블과 함께 사라졌다. 애당초 세가가 계획했던 PC와 메가 드라이브를 연동해 시도하려던 획기적인 무언가는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다.

일본 버블 시대가 낳았던 괴(怪)컴퓨터 '세가 테라 드라이브'
일본 버블 시대가 낳았던 괴(怪)컴퓨터 '세가 테라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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